특정 네트워크서 암호 풀면 비트코인ㆍ이더리움 등 획득
1억 투자 컴퓨터 40대 돌리고, 1회 100만원 고수 강의 등장
필수장비 그래픽카드는 동나
전문가 “위험한 수준”주의보
“채굴 비법을 배우려고 석 달이나 찾아 다녔어요.”
김모(31ㆍ자영업ㆍ경남 진주시)씨는 요즘 전자화폐 ‘채굴’에 온 정신을 쏟고 있다. 채굴은 컴퓨터를 이용해 특정 네트워크에서 암호화된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전자화폐를 하나씩 획득하는 과정을 일컫는 용어. 김씨는 지난달 초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컴퓨터 전문가에게 비법을 전수 받고, 며칠 전에는 채굴용 컴퓨터 두 대를 500만원에 구입했다. 그는 “어제는 하루에만 전자화폐 이더리움 0.2421개(시세 6만원 정도)를 채굴했다”면서 “이 추세로 다섯 달이면 컴퓨터 구입비 등 본전을 뽑고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법을 알려 준 분은 1억원 상당을 투자해 컴퓨터 40대를 돌리고 있다”며 “이번 주말엔 나도 특강을 들으러 서울로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근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전자화폐 채굴에 뛰어든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전자화폐는 기존 화폐와 달리 특정 프로그램과 컴퓨터만 있으면 누구나 발행하고, 거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안 화폐로서 주목 받고 있지만 통화량 자체가 제한돼 있어 새로운 투자자산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결국 발굴한 전자화폐를 팔아 차익을 남기겠다는 건데, 미국 황금광시대를 빗대 ‘디지털 골드러시(Digital gold rush)‘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고성능 그래픽카드나 전문 채굴 컴퓨터를 고가에 구입하는가 하면 비법을 전수받겠다면서 특강을 찾아 듣는 사람까지 생겨나고 있다.
채굴 광풍은 전자제품 판매가 전문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전자상가 등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4일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만난 상인들은 “채굴에 쓸 수 있는 고성능 그래픽카드는 없어서 못 판다”고 했다. 채굴을 용이하게 하려면 고성능 그래픽카드가 필수인데, 채굴만을 전문으로 하는 ‘채굴공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고성능 컴퓨터 부품 수요까지 폭발적이라는 것. 상인들은 “그래픽카드가 해외에서 들어오는 순간 박스째 팔려나간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에서 컴퓨터판매수리점을 운영하는 이모(39)씨는 “날마다 그래픽카드 구입 문의가 이어지는데, 정작 우리도 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급기야 4시간 수업 한 번에 100만원 정도하는 채굴 고액강의까지 등장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전자화폐 투자정보 및 채굴기 조립방법을 알려준다며 3월부터 시작한 소규모 강의엔 신청자가 몰리면서 수강료가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이 시장에서는 시간이 금이다, 지금 채굴에 투자하면 네댓 달이면 강의비는 물론 채굴기 금액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의 글들을 온라인상에서 보는 게 어렵지 않다. 채굴비법을 알려 줄 과외선생을 구한다는 글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열풍을 우려한다. 전자화폐 전문가인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매우 위험한 수준까지 왔다”며 “고가 장비를 갖춘 전문 채굴공장까지 들어서는 상황에서 일반인이 채굴 사업을 감당하기는 비용으로 보나 시간으로 보나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차익을 노린 투기세력이 등장하면서 전자화폐 가치가 폭락하고 투자비(장비 구입비) 회수조차 힘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홍 교수는 “특히 거래조차 되지 않는 ‘유사코인’을 다단계 방식으로 판매하는 경우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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