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6.5
영국 육군상(각료급) 존 프러퓨모(John Profumo, 1915~2006)가 이른바 ‘프러퓨모 스캔들’로 1963년 6월 5일 사임했다. 발단은 섹스 스캔들이었으나 사임까지 하게 된 결정적인 스캔들은 의회 위증이었다.
부유한 귀족(남작) 가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 브레세노스 칼리지를 졸업한 프러퓨모는 39년 영국 육군장교로 입대, 50년 준장으로 예편한 엘리트 귀족이었다. 2차대전 이탈리아 전선과 노르만디 상륙전 등에서 큰 공을 세워 44년 전쟁 중에 대영제국훈장(OBE, 4등급)을 탔고, 종전 후에는 미국 동성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전쟁 영웅이었다.
1940년 군인 신분으로 노샘프턴셔 케터링(kettering) 보궐선거에서 보수당 후보로 출마해 정치에 입문했고, 45년 선거에서 낙마한 뒤에는 영국 일본 주둔군 참모장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그는 50년 총선에서 워릭셔 스트랫퍼드온에이번(Stratford on-Avon) 지역구 하원의원이 됐고, 51년 집권한 보수당 내각 하에서 외교 교통 국방 등 여러 부처 각료를 지냈다. 60년 육군상이 됐고, 이듬해 7월 한 파티에서 만난 19세 모델 크리스틴 킬러(Christine Keeler)와 몇 주간 성적인 교제를 나눴다. 당시 그는 영화배우 발레리 홉슨과 결혼(54년)한 유부남이었다.
그 무렵에도 소문이 있었지만, 정치인의 사생활에 비교적 관대한 관행 덕에 공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62년 말, 킬러와 연루된 두 남성이 총기사건을 일으켜 조사 과정에서 킬러의 남자들 중 소련 대사관 해군무관(KGB정보원)이 포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63년 3월 한 노동당 의원이 ‘국가 안보’ 사안으로 그의 스캔들 의혹을 제기하자 프러퓨모는 의회 연단에 서서 킬러와의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그 위증으로 그는 사임했고, 맥밀런 보수당 정권은 10월 총선에서 패배했다.
‘무직자’ 프러퓨모는 사임 후 숨질 때까지 약 40년을, 그야말로 묵묵히 런던 동부 슬럼가 자선단체인 ‘토인비 홀(Toynbee Hall)’의 무급 봉사자로 살았다. 아내 홉슨 역시 98년 별세할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그 삶을 통해 프러퓨모는 자신의 명예를 회복했다. 영국 왕실은 75년 그에게 또 하나의 제국훈장(CBE, 3등급)을 수여했고, 대처 전 수상은 자신의 70세 생일 파티에서 여왕의 옆 자리를 그에게 양보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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