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정의 안내견 다이어리 3회]
“아, 답답해. 우리 솔잎이랑 여행이나 한번 가볼까?”
솔잎은 안내견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반려견으로 100점인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입니다. 우리 부부는 세 발짝 힘껏 뛰면 마루 끝에서 끝까지 가버리는 솔잎이 안쓰러워 여기저기 찾아 다니게 됐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갈 곳이 많이 없더군요. 애견카페나 반려견 놀이터는 주로 소형견 위주고 덩치 큰 아이들은 가만히 있어도 민폐여서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5년 전 고민 끝에 제주 여행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백사장을 함께 뛰고, 오름에 올라 시원한 바람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대형견과 여행을 허둥대는 일 없이 성공하려면 꼼꼼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가장 큰 난관은 이동방법인데요, 당시 여러 조건을 고려해 배를 선택했습니다. 비행기로 여행하면 운항사별로 다르지만 운송용기(케이지)까지 합쳐 5~7㎏ 이내일 경우에만 사람과 동반 탑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겁보 솔잎을 비행기 화물칸에 태우면 너무 놀랄 것 같아 좀 고생하더라도 느긋하게 즐기며 가기 위해 배를 선택한 겁니다.
그래서 제주까지 운항하는 해운사에 반려동물 탑승을 문의했는데 모두들 난감해 하더군요. 당시만 해도 대형견을 데리고 배를 타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이죠. 요즘은 케이지에 넣으면 크기에 관계없이 탑승을 허가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동용 케이지는 필수고 물과 사료, 배변봉투를 챙겨야 합니다.
보통 완도에서 출항하는 배를 타고 제주로 갈 경우 항구까지 6시간 가량 소요되는 운전 시간 등을 포함해 꼬박 12시간 걸립니다. 그렇더라도 다음 날 아침 미세먼지 없는 청명한 하늘을 마주하면 어느새 피곤이 싹 가십니다. 그래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를 둘러둘러 가는 녹록지 않은 여행이지만 5년 전부터 매해 솔잎과 제주 여행을 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이맘때 제주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노랗게 흐드러진 유채꽃이 막 지나간 뒤 청보리가 초록융단을 깔아놓은 듯 하늘거리며 초여름의 시작을 알리지요. 그 싱그럽고 찬란한 제주를 솔잎은 원 없이 뛰어다녔습니다. 처음 보는 벌레가 궁금해 들여다보다가 푸드득 날아오르는 꿩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사슴을 쫓아 겅중거리다 지치면 아무데서나 철퍼덕 앉아 숨을 골랐지요.
제주의 드넓은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는 견공도 있고 서핑을 하는 멋진 리트리버도 있더군요. 겁 많은 솔잎은 물에 발만 겨우 담그고 왔지만 올 가을에는 바다에 풍덩 뛰어들 지 못할 것도 없겠지요.
저희는 솔잎 때문에 이전에 몰랐던 세상에 눈을 떴고 생각하지 못했던 고민들을 하게 됐습니다. 도시에서 대형견과 살아간다는 것은 절대 쉽게 시작할 일이 아닙니다. 많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성실을 기꺼이 약속해야 하는 일이고 때로는 주변의 뜨악한 시선과도 마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는 솔잎의 친구들, 안내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솔잎이 행복해 하는 것이 그들도 함께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글·사진= 황현정 전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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