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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1818년 21세 여성의 손에서 탄생한 최초의 SF

입력
2017.06.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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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1

최신 과학에 근거 SF 장르 열어

과학기술 비관, 공포 담은 효시

어린 여성 작가 밝혀지자 혹평

#2

원작에선 이성ㆍ지식 갖춘 괴물

인정 못받는 천재여성 처지 투영

영화 이후 충동적 살인자로 각인

#3

창조자의 이름으로 남은 피조물

시대에 따라 재해석되며 재창조

괴물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

머리에 나사못이 박히고 지능 낮은 충동적 살인마로 각인된 괴물 프랑켄슈타인. 원작 소설과는 거리가 먼 이 이미지는 1930년대 유니버설픽처스의 영화에서 비롯됐다. 이후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재해석된 괴물은 사회의 관점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은 ‘프랑켄슈타인’(1931)의 속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1935).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머리에 나사못이 박히고 지능 낮은 충동적 살인마로 각인된 괴물 프랑켄슈타인. 원작 소설과는 거리가 먼 이 이미지는 1930년대 유니버설픽처스의 영화에서 비롯됐다. 이후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재해석된 괴물은 사회의 관점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은 ‘프랑켄슈타인’(1931)의 속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1935).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10월 16일은 ‘세계 식량의 날’인 동시에 유전자조작식품(GMO)반대생명운동연대가 정한 반 GMO의 날이다. 이들은 한국이 세계 2위의 GMO 수입국임에도 표기는 거의 되어 있지 않음을 지적하며, GMO 식재료 표기, GM작물 개발 중단을 요구한다. GMO는 아직 위험성도 안전성도 증명되지 않았지만, 위험성을 강조하는 단체에서는 이를 ‘프랑켄푸드(Frakenfood)’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명칭의 효과는 선명하다. 별 설명 없이 과학의 오만, 자연을 거스르는 생산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와 경계심을 상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폭풍우 치는 밤에 태어난 SF

‘프랑켄슈타인’은 소설로 태어났지만 이미 인류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하나의 신화이자 강박이다. 신기술이 나올 때에나 과학의 위험성을 경고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어김없이 인용된다.

소설의 탄생 배경은 신비하고도 흥미롭다. 1816년 스위스 제네바 근처의 별장에 네 사람이 모여 있었다. 별장 주인인 당대 최고의 시인 바이런, 그의 주치의인 존 폴리도리, 마찬가지로 당대 최고의 시인 퍼시 셸리와 아직 19세였던 그의 어린 애인 메리 고드윈이었다. 밖에는 폭풍우가 치고 있었다. 후세에 ‘여름이 없는 해’로 기억되는 음산한 해였다. 전 해에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이 폭발해 화산재가 하늘을 덮어 여름에도 서리가 내리고 계속 비가 내렸다. 흉작과 기근이 이어졌고 음울한 문학이 유행했다. 비에 발이 묶인 네 사람은 유령이야기를 읽다가 하나씩 무서운 이야기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두 시인은 이내 약속을 잊었지만 메리 고드윈은 생각을 거듭했다. 그녀는 잠자리에 누웠다가 강렬한 환영을 보았다. 자신의 창조물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사람과 그 앞에 누운 흉물스러운 남자의 환상이었다. 남자는 움찔거리며 깨어났고 과학자는 자신의 성공이 두려워 도망쳤다. 백일몽에서 깨어난 그녀는 이 환상을 기반으로 2년간 소설을 집필해 1818년 익명으로 한 소설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공포소설의 대명사이자 후대에 최초의 SF로 평가되는 작품, ‘프랑켄슈타인, 또는 근대의 프로메테우스’였다. 다음 해에는 폴리도리도 ‘뱀파이어’라는 작품으로 쌍벽을 이루는 전설적인 괴물 캐릭터를 만들어 내었다.

‘프랑켄슈타인’은 큰 인기를 누렸지만 당대 비평가들의 혹평에 시달렸고, 저자가 어린 여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로는 ‘어린 여성의 병적인 상상력’이라는 악평을 받으며 더 매섭게 가치절하되었다. 그러다 후대에 SF문학이 유행하기 시작한 뒤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메리 셸리가 어떤 장르를 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1865년 쥘 베른이 ‘지구에서 달까지’를 내놓으며 SF문학을 정립하기 시작했지만, 그보다 47년 전에 이미 완전한 형태의 SF가 세상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평가와는 관계없이 이 작품은 끝없이 재생산되며 문화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발명가 에디슨이 만든 초기 영화 중 하나였고, 1931년판 영화는 대성공을 거두어 괴물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영화, 연극, 드라마, 게임, 뮤지컬, 만화 등으로 재창조되었고, 2006년 출간된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영향력 있는 사람’ 6위에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괴물이 오르기도 했다. 과학만능주의와 인공생명체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을 드러내는 서구 SF의 흐름이 실상 ‘프랑켄슈타인’의 계보 아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 시인 바이런의 초상화. 그의 별장에서 여름을 지내며 무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고 한 이야기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존 폴리도리의 ‘뱀파이어’를 탄생시켰다.
영국 시인 바이런의 초상화. 그의 별장에서 여름을 지내며 무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고 한 이야기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존 폴리도리의 ‘뱀파이어’를 탄생시켰다.

최초로 SF의 특성을 모두 갖춘 작품

거슬러 올라가면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나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 과학적 사고에 근거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을 SF의 효시로 꼽지 않을 수 없다. 1816년 말 메리와 결혼한 퍼시 셸리가 초판에 쓴 서문은 실상 SF의 원론적 정의나 다름없다. “현재 학자들에 의하면 이 내용은 불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진지하게 믿는 것도 곤란하지만, 현실만큼의 설득력 또한 있다.”

메리 셸리는 1831년판 개정본 서문에서 에라스무스 다윈과 갈바니즘(galvanism)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갈바니즘은 이탈리아의 해부학자이자 생리학자인 갈바니가 1780년, 죽은 개구리의 뒷다리에 칼을 대자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것이 생체 전기로 인한 현상이며 동물조직 안에 생명력이 있다고 주장한 이론으로, 당시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이 죽은 신체조직을 모아 ‘생명의 불꽃’으로 생명을 창조하는 아이디어는 이 이론에 근거한다. 찰스 다윈의 조부이자 진화론의 선구자인 에라스무스의 연구 또한 ‘생명을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힘을 실어주었다.

소설 내에서 프랑켄슈타인이 언급하는 학자와 이론은 눈부실 정도다.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16세기 독일의 저명한 연금술사), 파라켈수스(16세기 독일계 스위스인 연금술사로 현대 약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13세기 독일의 신학자, 자연과학자), 플리니우스(고대 로마의 학자, ‘박물지’의 저자), 뷔퐁(18세기 자연과학자, 진화론의 선구자)등이 줄줄이 소개되며, 1831년 개정판에서는 아이작 뉴턴도 언급된다. 여러 자연철학을 섭렵한 프랑켄슈타인이 그 중 화학을 선택해 몰두하는 전개는, 정식 교육조차 받지 못한 이 어린 작가가 당대 최고수준의 과학지식을 갖추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원작 발표 110여년이 지나 헐리우드 영화로 제작된 '프랑켄슈타인'(1931).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원작 발표 110여년이 지나 헐리우드 영화로 제작된 '프랑켄슈타인'(1931).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누가 괴물이고 누가 프랑켄슈타인인가

흥미로운 점은 많이 알다시피 과학자의 이름인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으로 뒤바뀌어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괴물의 이미지와 원전의 캐릭터가 상이하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흔히 알려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이미지는 실상 제임스 웨일 감독의 1931년판 흑백영화에서 비롯한다. 이 영화 속의 괴물은 범죄자의 뇌를 가진 탓에 살인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지능도 떨어지고 말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원전의 괴물은 그렇지 않다. 백지와 같은 상태로 태어났지만 독학으로 학문을 섭렵하며, 또렷한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교양 있고 지적인 인물이다. 단지 사회에서 끊임없이 배척당할 뿐이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메리 셸리의 아버지는 아나키즘의 효시로 알려진 선구적인 운동가 윌리엄 고드윈이었고, 어머니는 유명한 페미니스트였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였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서적’으로 평가되는 ‘여성의 권리 옹호’라는 책에서, 남녀는 똑같이 이성을 갖고 태어났고 열등해 보이는 이유는 단지 교육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이 어머니는 셸리를 낳고 11일 만에 산후 패혈증으로 사망했고, 계모는 딸의 교육을 거부했다. 셸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책을 탐독하고 당대의 전문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지식욕을 달래야 했다. 하지만 기술했다시피, 셸리의 지식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당대 최고 지식인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셸리의 입장에서 그녀가 이입한 대상은 ‘과학자’가 아니라 ‘괴물’이었을 것이다. 괴물이 이름조차 얻지 못하고 아무리 애써도 사회의 일원으로 수용되지 못하는 모습은,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음에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에 편입될 수 없었던 그녀의 삶을 대변한다. 괴물이 백지 상태로 태어났지만 단지 환경 탓에 진짜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은, 남녀 차이가 단지 교육의 차이라 믿었던 그녀의 어머니의 철학을 그대로 반영한다. 하지만 이를 재생산한 창작자들은 ‘과학자’에 자신을 이입하여 ‘괴물’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를 형상화했을 것이다. 주류의 시선으로 본 괴물은 충동적이고 위험하고 무식하며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였고, 이 이미지가 그대로 각인되어 온 것이다.

시대의 철학을 반영하는 작품

‘프랑켄슈타인’은 세월이 흐르며 그 해석이 다변화되어 왔다. 괴물은 무서운 이미지를 벗어나 불쌍하고 가여운 이미지로, 때로는 귀엽고 무해한 이미지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그 변화 자체가 주류의 시선과 관점의 변화를 상징한다. 2011년 대니 보일이 연출하고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조니 리 밀러가 주연하여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킨 연극 ‘프랑켄슈타인’에서는, 원전의 해석을 적극적으로 가져오는 동시에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을 두 주연이 교대로 배역을 맡게 하는 흥미로운 연출을 선보였다. 사람이 환경에 따라 괴물도, 인간도 될 수 있다고 믿은 작가의 철학을 반영하는 동시에, 결국 과학자이자 창조자였던 ‘인간’의 이름이 괴물의 이름으로 둔갑하여, 공포와 위험의 상징으로 세상에 퍼져나간 아이러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보영ㆍSF 작가

메리 셸리

1797년 8월 30일~1851년 2월 1일. 영국의 무정부주의자, 자유주의자였던 급진 사상가 윌리엄 고드윈과 당대 유명한 페미니스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딸로 태어났다. ‘프랑켄슈타인’을 출간해 SF라는 장르의 서막을 열고, 다방면의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다섯 아이 중 네 아이가 어린 나이에 사망하고, 이복 여동생과 남편의 전 부인이 자살하고 남편도 사고로 사망하는 불행을 연이어 겪었다. 이후 많은 구애를 받았지만 독신생활을 고수하며 여러 소설과 여행기를 남겼고 최초의 종말소설로 알려진 ‘최후의 인간’을 집필했다. 53세의 나이에 뇌종양으로 사망한다.

<소개된 책>

프랑켄슈타인(1818년판)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문학동네 발행

프랑켄슈타인(1831년판)

메리 셸리 지음

황소연 옮김

배리 모저 그림

비룡소 발행

최후의 인간

메리 셸리 지음

김하나 옮김

아고라 발행

여성의 권리 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지음

문수현 옮김

책세상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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