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성소수자들에게 가장 진보적인 국가, 대만이 아시아 최초의 동성혼 합법화 국가가 됐다. 지난달 24일 한국의 헌법재판소에 해당하는 사법원 대법관회의에서는 남녀간의 결혼만을 인정한 대만 민법이 위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기사보기☞ 대만, 아시아 첫 동성결혼 허용)
이날 판결은 대만의 성소수자 인권운동가 치자웨이(59)의 30년에 걸친 동성혼 합법화 투쟁의 결실이기도 했다. 치자웨이는 지난 1986년 40여년간 이어진 대만의 계엄령 막바지 시기, 게이로 커밍아웃을 한 이후 5개월여를 감옥에서 보냈다. 그는 같은 해 타이페이 지방법원에 동성 결혼 공증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했고, 이후 무수한 청원과 민사∙행정 소송 등을 이어왔다.
이번 사법부 결정도 그의 소송에서 시작됐다. 2013년 그의 결혼 등기 시도가 거절당하고, 행정소송에서도 패소하자 타이페이 시 당국이 동성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 대만 민법에 대한 헌법 해석을 요구하면서 불거졌기 때문이다.
치자웨이의 사례처럼 인구 2,300만명의 대만이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국가가 된 데에는 ‘혼인평권 운동’으로 불린 대만의 오랜 동성결혼 합법화 투쟁과 사회적 공론화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만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성소수자 축제인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리는 곳을 꼽힌다. 지난 2015년에는 7만5,000여명, 지난해 8만여명이 몰리는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 끊임없이 성소수자 의제가 제시되고 공론화된다.
특히 지난해 1월 대만의 제14대 총통으로 차이잉원이 취임한 이후 동성혼 합법화는 급물살을 탔다. 차이잉원은 중화권 최초의 여성 국가수반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가문 배경없이 자력으로 선거에서 선출된 최초 여성 정치인이다. 차이잉원 총통은 선거 과정에서 공개적으로 동성혼 합법화를 지지하고 성소수자 권리 향상을 약속하면서 동성혼 합법화 찬성 진영의 큰 지지를 받았다.
지난 2001년 대만인구의 5분의 3은 동성혼 합법화에 반대했지만, 현재는 절반 가량이 이에 찬성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젊은 세대는 대체로 동성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반면 노년층은 일반적으로 반대하는 추세다.
2016년 숨가쁘게 달린 대만의 동성혼 합법화 여정
동성혼 합법화에 찬성하는 정부가 탄생한 지난해, 대만에서는 성소수자 이슈가 쉬지않고 발생했다. 지난해 8월 25일 트랜스젠더 오드리 탕(36)이 대만의 디지털 정책을 책임지는 행정원의 디지털 정무위원으로 임명돼 전세계적 이슈가 됐다. 해커 출신으로 24세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탕은 최연소 각료이자 최초의 트랜스젠더 정무위원이 됐다.
지난 2016년 10월29일 타이페이에서 열린 프라이드 퍼레이드에는 8만여명의 인파가 참석했다. 이날의 최대 주제는 역시 동성결혼 합법화 요구였다. 행사 참석자들은 “언제까지 성소수자들이 기다려야 하나?”등의 문구를 들고 행진했다.
한국의 국회에 해당하는 입법원에 여러 개의 동성혼 합법화 법안이 발의된 가운데 지난해 11월 8일에는 집권당인 민주진보당과 국민당이 낸 민법 개정안인 ‘혼인평권초안’이 제1독회(한국의 상임위원회 의결에 해당하는 절차)를 통과했다. 기존 대만 민법에서 “혼인은 남녀 당사자가 스스로 결정할 것”이란 규정에서 ‘남녀’를 ‘두 당사자’로 수정하는 게 민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었다.
동성혼 합법화를 향한 입법 절차가 활기를 띄는 가운데 지난해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타이페이에서 열린 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음악회에는 무려 25만명이 참가하기도 했다.
한편에선 당장 동성커플의 보호를 위한 일부 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26일부터 타이페이시는 동성 파트너에 대한 증서를 발부하기 시작했다.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ID카드 모양의 동성 파트너십 증서가 있는 커플의 경우 상대방의 의료 동의서에 서명하는 등의 제한적인 권리 행사가 가능하게 됐다.
“동성혼 합법화 국민투표로 결정해라” 반대진영 목소리도
물론 동성혼 합법화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해 11월 17일 혼인평권 초안이 입법원 심사 절차에 들어가자 반 동성애 단체들이 심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2만여명을 동원해 입법원을 포위하고,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국민투표 결정을 주장했다.
여당인 민진당 역시 흔들렸다. 반동성애 단체의 압력을 받아 심사를 중단하고 민법 개정이 아닌 동성결혼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향으로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만의 동성결혼 합법화 과정에서는 입법원과 법무부 주최의 공청회도 2012년부터 10회에 걸쳐 이어졌다. 동성결혼 찬성과 반대 세력이 모인 이 공청회에서는 혐오발언이 난무하기도 했지만 반대진영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검토되고,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사회에 알리면서 관련 의제를 드러내는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가장 진보적인 대법관들’이 만든 동성혼 합법화
이처럼 끊임없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온 대만의 동성결혼 합법화 여정은 지난 달 24일 사법원 대법관회의의 결정으로 30여년의 역사 중 한 획을 그었다. 대법관회의는 이날 역사적인 판결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했다.
차이잉원 총통은 지난해 1월 취임 후 동성혼 합법화 추진에 침묵한다며 일부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진보적인 대법관을 임명하며 동성혼 합법화에 힘을 보탰다. 사법원 대법관 15명은 지금까지 대만 대법관들 역사상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중 7명이 차이잉원 총통이 지명한 사람들이었다.
그는 또한 동성혼 합법화 찬반 양측의 대화를 끊임없이 강조하기도 했다. 차이잉원 총통은 지난 2월말 동성혼 문제에 대해 양측 대표들과 면담한 후 트위터에 “차이점을 해결하는 것이 시작이다. 더 많은 대화와 이해가 필요하다”고 남기기도 했다.
역사적인 이날 민법의 위헌 결정은 전체 대법관 14명 중 12명 찬성, 2명 반대라는 압도적인 숫자로 결정됐다. 그나마 1명도 동성애자 권리를 옹호하는 국회의원과 결혼한 대법관이 판결의 중립성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판결에서 빠진 것이었다.
대만이 불을 당긴 동성혼 합법화의 불씨는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로도 옮겨가고 있다. 태국은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동성혼 합법화 국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태국 법무부는 동성혼 합법화와 동성애자 권리보장 등을 골자로 하는 법안 통과를 요구하는 탄원서에 대한 지지 조치를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성별이라도 등록만 하면 사회적인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있는 동반자법을 담은 탄원서에는 온라인으로 약 6만명이 서명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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