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내각에 ‘여성 1호’가 여럿 이름을 올리면서 ‘유리 천장’이라는 용어가 새삼 회자되고 있다. 유리 천장은 현대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며 일정 이상의 지위에 올랐을 때 부딪히게 되는, 언뜻 보면 보이지 않고 부딪혀보면 결코 깨지지 않는 장벽을 이르는 용어다.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 피우진 보훈처장, 그리고 장관 후보자들까지 ‘파격 인사’의 주인공이 되면서, 이들의 경우를 들어 언론이 ‘유리 천장이 깨졌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정말 여성 1호들이 유리 천장을 깨고 있는 것일까?
유리 천장의 핵심은 무엇보다 유리의 투명함에 있다. 천장에 당도해 본 여성이 아니고서는 그 존재를 알기가 매우 어려운 투명함이야말로, 보통의 장벽에 비유해서는 알 수 없는 여성 차별의 특징이다. 따라서 이 천장을 깨기 위한 싸움은 유리 천장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유리 천장을 보며 ‘절대 깨지지 않는’ 유리가 기어코 깨질 때의 쾌감만 묘사하고 싶어하는 듯 보인다.
당연히 이 단단한 천장과 직접 부딪혀보지는 않았지만, 존재를 눈치 챈 사람들은, 유리인데 왜 깨지지 않는지를 궁금해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유리가 방탄유리인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생의 모든 주기마다 찾아오는 차별과 경력 단절의 위기를 견뎌낸 소수의 여성만이 겨우 그 위에 올라설 기회를 얻을 뿐이다. 올라갈 길이 막혔음에도 ‘안 보이는데 차별이 어디 있냐’는 말에 유리 천장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여성들과, 그 어느 것으로도 막히지 않은 하늘 아래의 남성들은 애초부터 비교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그걸 알지 못하니 겨우 몇 명이 눈에 띄는 위치에 올라갔다는 이유로, 심지어 그 자리는 이전까지 대부분 당연히 남성의 것이었고 절대적인 비율은 여전히 언급하기 부끄러운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유리 천장이 깨졌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한 남성 정치인은 여성가족부의 장관을 남자가 맡고, 국방부 장관을 여성이 맡는 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의 존재를 여성에게 부여한 특권이라고 말하고, 내각 구성의 30%를 여성에게 맡기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에 역차별을 운운하는 남성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 나라에서 그런 이야기는 내각 구성의 성비가 같아졌을 때 해도 전혀 늦지 않다. 여성이 고위직에 지명되었을 때 ‘파격 인사’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날, 궁극적으로는 여성가족부가 필요 없어지는 날 말이다.
지금까지 발탁이 되지 않은 게 놀라울 만큼 출중한 이력의 소수 여성이 유리 천장을 깼다는 평가를 받는 동안, 평범한 여성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있다. 결혼해서, 결혼하지 않아서 차별 받고,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경력단절의 공포에 시달리며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산다. 유리천장을 깼다는 증거가 되는 여성 의사결정권자는 극히 소수다. 이들로 인해 정말 유리천장이 깨진 것이라면, 그 아래의 여성들도 이제 어떤 장벽에도 부딪히지 않고 위로 올라갈 수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오히려 또 다시 유리 천장에 부딪힌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은 했는데 당신은 왜 하지 못하는가’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 또 유리 천장 위에 오른 소수의 여성은 ‘여성 1호’라는 상징성으로 인해 더 많은 부담을 짊어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남성의 성공과 실패는 개인의 것으로 평가 받지만, 여성의 경우는 해당 개인이 아닌 여성의 성공이나 실패로 치환된다. 이 또한 여성에게 이중으로 부과되는 차별이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유리 천장은 깨지지 않았다. 개인의 힘으로는 절대 깰 수 없는 천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깨지기를, ‘여성 1호’가 존재하는 곳이 없기를 바란다. 여전히 시기상조라고 생각하는가? 미안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늦었다.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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