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ㆍ법무부서 선거법 적용에 난색
“그래도 흑(黑)을 백(白)이라 할 순 없어”
수사권 조정ㆍ공수처 설치 “부작용 우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당시 “퇴임사까지 써놓고 수사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2013년 4월 검찰총장에 올랐으나 이후 혼외자 사건이 터지면서 취임 5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채 전 총장은 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댓글 사건에 개입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구속까지는 안 한다 해도 흑(黑)을 백(白)이라 할 수는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지 여부였는데, 청와대와 법무부 장관 쪽에서 난색을 표해 어려움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과 대검에서 난상토론과 회의를 거듭한 결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최종 결론을 내리고 둘을 구속하겠다며 법무부에 보고했다”며 “국가의 정보기관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것은 가장 중한 국기 문란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순탄치 않았던 수사과정도 털어놨다. 채 전 총장은 “권력에 부딪혔고 일촉즉발의 상황도 있었다”면서 “검찰총장 입장에서 이 문제를 소리 안 나게 처리해야 했는데, 큰 원칙에 어긋나서도 안 되지만 정무적인 판단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결국 원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지만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겼다.
이후 수상했던 서울 서초동 검찰청 인근 분위기도 떠올렸다. 채 전 총장은 “기소한 지 50여일이 지났는데 검찰청 앞으로 극우단체 회원 수십 명이 몰려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플래카드를 들고 대형 확성기로 ‘종북좌파 총장 물러가라’고 소리쳤다”며 “그러다 9월 초 혼외자식 보도가 터지고 희한하게도 바로 극우단체가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 사태로 채 전 총장은 취임 5개월 만에 퇴진했다.
그는 검찰이 정권이나 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하도록 만드는 게 검찰개혁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채 전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적 공약인 검ㆍ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 신설은 수사체제 변혁의 문제”라며 “순기능보다 더 큰 폐해와 부작용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검찰이 잘못하고 힘이 너무 세다고 해서 검찰의 수사기능을 빼서 공수처나 경찰에 준다고 문제가 해결될지 모르겠다”며 “국가 전체로 볼 때 경찰 비대화 문제를 해결하고 통제 방안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채 전 총장은 퇴임 후 3년여 만인 최근에야 변호사로 개업했다. 올해 4월에는 ‘더스틴 채(Dustin Chae)’라는 가명으로 미국 뉴욕에서 열린 ‘아트엑스포 뉴욕’ 전시회에 미술작품인 ‘생명의 나무’ 연작을 출품하는 등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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