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누락’ 즉각 조사 몰아치다
국제 문제 비화로 부담만 커져
文대통령 “조사는 국내 조치” 진화
질책하던 한민구 국제회의 파견
외교ㆍ안보라인 인선 늦어지고
안보 전문가 없어 혼선 지적
청와대는 1일 국방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발사대 추가 반입 보고 누락과 관련해 공식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진상조사와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및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로 몰아치던 지난 이틀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를 두고 청와대가 성급히 과도한 조치를 취했다가 논란이 국경을 넘어 번지고 국내에서도 비판론이 제기되자 수위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와 여권은 이번 파문을 정권교체기의 혼란 와중에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벌인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하고 격앙돼 있다. 때문에 청와대는 사드 배치 절차 전반에 대한 조사로 전선을 넓히고 있지만 보고 누락 사건이 국경을 넘어 국제 문제화하는 데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 당장 보고 누락 파문을 두고 미국에서 합의 이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중국에서는 ‘사드 배치 즉각 취소’ 주장이 불거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서둘러 “(진상조사) 지시는 전적으로 국내 조치”라며 진화에 나섰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 딕 더빈 미국 민주당 상원 의원이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이 사드를 원하지 않으면 우리는 9억 2,300만달러(사드 비용)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고 문 대통령에게 말했다”며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와 함께 보수 진영은 물론 여권에서도 새 정부의 책임론이 나오자 청와대가 속도 조절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청와대 설명에 따르더라도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21일째인 30일에야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야 사드 발사대 4기의 추가 반입을 확인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가안보실이 사드 추가 반입과 관련해 인수ㆍ인계한 자료가 거의 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누구라도 최대 외교현안인 사드를 챙겼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에서도 사드가 중요 현안이기 때문에 오자마자 검토를 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고 아쉬워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발사대 4기의 추가 반입 사실이 이미 언론을 통해 대선 직전 다 공개된 마당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 20일 만에 뒤늦게 호들갑 떨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청와대 외교ㆍ안보라인의 인선이 늦어진 대목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정부 출범 12일째인 지난달 21일 임명됐고, 안보실 1, 2차장은 사흘 뒤인 24일에나 임명됐다. 더구나 과거 대통령직인수위를 대신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도 안보 전문가가 절대 부족하다 보니 구멍이 생겼다는 지적이다. 국정기획위 외교ㆍ안보 분과에는 안보 전문가가 한 명도 없다.
청와대가 김관진 전 실장과 한민구 장관의 조사를 통해 국방부의 의도적인 누락을 확인하고도 ‘누락의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지 않는 대목도 석연치 않다. 청와대 관계자는 “보고 누락의 의도성과 사드 반입 과정 전반에 대한 조사는 향후 진행할 것”이라고만 설명했다. 정의용 실장과 한민구 장관의 대화 내용까지 공개하며 한 장관을 질책했던 청와대가 한 장관을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에 정부 대표로 파견한 대목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편 한미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미국 방문길에 오른 정의용 실장은 “사드 진상조사가 한미동맹관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미국에 충분히 설명했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이날 출국 길에 취재진을 만나 “전날 외교부 경로를 통해 보고 누락 경위에 대해 조사하게 된 배경을 미국측에 설명했으며, 이상철 국가안보실 1차장도 한미연합사령관을 방문해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김회경 기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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