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간부가 해외 출장 중
산하 기관 여직원에 만취 추행
감사위, 대기발령 후 수사 의뢰
또 다른 직원 3, 4명도 성희롱 조사
엉터리 보조금 정산도 감사 착수
광주시가 성추문에 휩싸였다.
시로부터 지방보조금을 지원받는 민간과 공공기관 등 기관단체의 여직원들에 대한 공무원들의 성폭력 문제가 불거지면서 광주시감사위원회가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공무원 중엔 고위 간부들도 포함돼 있는 데다, 이들이 소속된 부서의 위탁사업비 횡령 의혹까지 제기돼 파장이 커지고 있다.
시 감사위원회는 1일 해외 출장 중 산하 공공기관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A과장(4급)과 직원 B씨(6급)를 대기 발령하고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감사위에 따르면 A과장은 지난달 8일 대만 출장 중 동행한 산하기관 여직원과 가진 술자리에서 만취한 채 음담패설을 하고 끌어안는 등 길거리와 호텔 객실 앞에서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A과장은 추행을 뿌리치고 숙소로 돌아간 여직원 숙소까지 쫓아가 수 차례 초인종을 누르고 전화를 하는 등 추태를 벌였으며, 만류를 부탁 받은 직원 B씨는 이를 방관했다고 감사위는 밝혔다. 이번 출장에는 유관기관인 모 협회 여직원 1명도 동행했다.
감사위는 이번 사건이 만취한 공무원의 우발적인 단순 성추행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보조금을 집행하는 상급기관 공무원들과 보조금을 받아 위탁사업을 하는 산하 기관 및 유관단체의 여직원 사이에서 성추문이 불거졌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보조금 지원 등으로 얻은 제도 내 권력이 위탁사업 선정 등과 맞물리며 ‘갑을 관계’로 이어졌고, 이게 해당 조직 내에서 만연화했다는 것이다. 실제 A과장이 소속된 부서를 거쳐간 또 다른 공무원 3~4명도 이 부서 근무 당시 산하 공공기관 및 유관단체 여직원을 성희롱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감사위가 감사를 진행 중인 게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를 두고 시청 안팎에선 “A과장 부서 공무원들의 성희롱과 갑질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공무원들이 업무를 핑계로 산하 기관이나 유관단체 여직원을 불러내 술자리를 강요했다”는 얘기가 퍼져 있다. 일각에선 “성희롱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조직 내부 분위기도 이런 병폐를 공고히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B씨가 A과장의 성추행을 방관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성추행 등이 일어나도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감사위가 A과장 등을 대기발령하고 경찰에 수사 의뢰하는 강수를 둔 것도 피해자들의 관련 진술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다.
이 부서 공무원들의 무뎌진 공직의식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시민의 혈세인 보조금 집행과 관리는 ‘구멍’ 그 자체였다. 실제 이 부서는 보조금 수십억 원을 주고 각종 위탁사업 운영을 맡긴 유관단체로부터 정산보고서와 증빙서류 등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사업자에게 해마다 실적보고서를 받아 보조금을 제대로 사용했는지 정산검사를 해야 했지만 이런 기본적인 업무조차 하지 않고 수년 간 보조금만 지원한 것이다. 감사위는 이 같은 엉터리 보조금 정산 과정에서 위탁사업비 횡령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감사위 관계자는 “산하 공공기관과 유관단체에 대한 보조금 집행 및 관리실태, 사업 위탁과정에서의 유착 의혹 등도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시 본청은 물론 사업소, 출자ㆍ출연기관 등 모든 직원에 대한 성교육을 조속히 실시하고 여성정책관실과 감사위에 성희롱 등 신고센터를 설치, 운영하는 등 성비리를 근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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