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구립실버악단 전속가수 선발
아마추어부터 가요제 수상자까지
2명 뽑는데 39명 몰려… 19.5대 1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가채점
아쉬움에 무대 머물러… 열기 후끈
“내 나이 일흔 다섯이지만 내 자신은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느껴요. 노래로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 나왔습니다.”
31일 서울 노원구립실버악단 전속가수를 뽑는 오디션 현장. 상계3ㆍ4동주민센터 5층 강당이 나이를 잊은 열정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33번째 참가자 박덕자(75)씨가 선택한 곡은 허영란의 ‘날개’.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온 그의 목소리는 천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박씨는 “하도 기다려서 목이 잠기는 바람에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했다”면서도 “무대 체질인지 앉아있는 사람들 표정까지 보면서 불렀다”고 말했다. 그는 “주부로만 살아오다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뜬 후 노래로 치유를 받았다”며 “나이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음악을 사랑하는 65세 이상 어르신(가수는 45세 이상)들로 이뤄진 노원구립실버악단의 전속가수 2명을 뽑는 이날 오디션에는 39명이 몰렸다. 무려 19.5대 1의 경쟁률이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61세. “노래가 좋아서” 응시한 아마추어부터 실제 음반을 내봤거나 가요제 수상 경력이 있는 베테랑까지 ‘노래 좀 한다’하는 동네 어르신 가수들이 모두 모였다.
“이런 오디션은 생전 처음 해봅니다.” 오디션 참가자 중 최고령자인 79세의 김기호씨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첫 번째 참가자로 현제명의 ‘고향생각’을 부른 그는 자신의 순서가 지나고도 한참을 청중석 맨 앞 줄 자리를 지켰다. 김씨는 “실버 가수가 될 수 있을지 내 노래와 비교해보면서 다른 사람들 노래를 채점해봤다”며 “윤수일 노래를 부른 5번째 참가자가 젤 낫더라”며 귀띔했다. 중절모와 선글라스를 멋스럽게 쓰고 온 임건택(75)씨는 “나이가 들어 이제는 자원봉사를 해보고 싶던 차에 이런 기회가 있어 도전정신을 갖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50대 젊은이들에 비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참가자들은 “다시 불러보면 안 되냐”며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거나 아쉬운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등 진지하고 치열하게 오디션에 임했다. 노래 가사를 잊거나 박자를 놓치는 작은 실수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수준급의 실력을 선보였다. 이미 지난 1월 한 차례 오디션을 가졌지만 적격자가 없어 전속가수를 뽑지 못해 이날 다시 모인 심사위원들도 고민에 빠졌다. 심사를 맡은 김철호 삼육대 음악학부 교수는 “8명 정도를 놓고 고민이 될 정도로 좋은 가수들이 많이 왔다”며 “청중과 호흡하는 것이 중요한 노원구의 대표 가수로서 감정을 호소하는 타고난 끼와 무대 매너, 마이크를 쓰는 노련한 기술도 함께 고려해 최대한 공정하게 선발하겠다”고 말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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