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마릴린 먼로

입력
2017.05.31 19:52
0 0

[기억할 오늘] 6.1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가 1926년 6월 1일 태어났다.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가 1926년 6월 1일 태어났다.

배우 마릴린 먼로가 1926년 6월 1일 태어나 62년 8월 5일 신경안정제 과다복용으로 숨졌다. 그 36년의 짧은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들보다 훨씬 극적인 삶의 이야기를 남겼다.

어머니의 정신질환으로 입양 가정에서 성장해야 했던 불우한 유년, 양부의 성추행과 16세의 이른 결혼, 뜻밖의 행운이었을 모델 데뷔. 그는 스무 살에 영화배우로 데뷔해 단숨에 ‘20세기 섹스 심벌(sex symbol)’이 됐고, 상업적 성공과 함께 찾아온 눈부신 스타덤의 시간을 누렸고, 그 사이 세 차례 잇단 이혼과 결혼과 이혼, 약물 중독, 케네디가(家) 남자들을 포함한 여러 유명 인사들과의 염문.

생전의 그는 숨질 때까지 자신을 유명하게 한 ‘섹스 심벌’의 이미지로부터 도망치고자 노력했다. 데뷔와 거의 동시에 이미 스타였던 그는 부끄러움 없이 연기학교와 대학 공개강좌를 찾아 다니며 예술가로서의 기량을 늘리고자 노력했고, 50,60년대 할리우드의 이념 지형 안에서 시민으로서의 좌표를 찾기 위해 진지하고 고민했다. 한사코 치마를 들추려는 할리우드 상업자본도, 어쩔 수 없이 그 요구에 순응하는 자신을 그는 못마땅해 했고, 그렇게 자신을 소비하는 대중도 혐오스럽게 여겼다. 일기형식의 자서전 ‘마이 라이프’에서 그는 “사람들은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 자신들의 음란한 생각을 본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자기들의 환상이 깨지면 나를 탓한다”고 썼다.

그의 처음과 끝, 이미지와 실제 사이의 명암이 너무 대조적이어서, 그의 사후 섹스 심벌의 이미지로부터 그를 ‘구원’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사진이 보여주는 장면을 근거로 그를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읽는 “철학적인 시인 같은 지성파 배우”의 이미지를 투영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그는 빼어나게 섹시한 외모를 지닌 배우였고, 자신의 이미지에 갇히기보다 더 다양하고 멋진 연기를 펼치고자 노력했던 예술인이었다. 배우가 굳이 철학적인 시인까지 될 필요도, 지성파여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단 한 순간도 행복하지 않았다”는 자서전의 한 구절처럼, 그는 죽어서도 온전히 있는 그대로의 그로 남지 못할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공식적 사인은 자살이지만 몇 가지 의혹과 함께 여러 시나리오의 타살 의혹이 아직도 떠돈다. 죽음의 과정에까지 자신들의 환상을 투영하려는 이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최윤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