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강요 등 가족갈등
“엄마가 강제로 풀만 먹여요”
반대로 아이들 불만 낳기도
10년째 페스코(우유 계란 생선까지만 먹는 채식주의) 식단을 지켜온 강효원(34)씨는 지난해 결혼한 후 부쩍 채식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졌다. “고기를 안 먹어서 임신이 안 되는 거다”거나 “어른들이랑 같이 먹는 밥상에서 음식 가리는 거 아니다”라는 식의 시댁 어른들 압박 때문이다. 남편이 가끔 중재에 나서주기도 하지만, 눈치는 여전. 강씨는 “명절이면 차라리 부엌에서 일하느라 밖으로 안 나오는 게 마음이 편할 정도”라고 털어놨다.
국내 채식 관련 시장이 2조원대를 넘어설 정도로 채식 인구가 급증하면서 가족들과의 갈등을 호소하는 채식주의자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손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채식을 강요하거나, 반대로 육식을 강요하면서 다툼과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1일 서울혁신파크에서 개최된 ‘비건 페스티벌’에 7세 아들과 함께 참석한 정모(34)씨는 “남편과 고민한 끝에 아이도 채식을 시키기로 결정했다”면서 “콩으로 만든 고기 등을 통해 아이에게 충분히 다양한 영양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채식을 강요당하는 자녀들은 불만이다. 고등학생 김모(17)양은 “엄마가 2년 전부터 채식에 관심을 갖더니 온 가족이 강제로 풀만 먹고 있다”면서 “자꾸 몰래 군것질을 하게 되니 오히려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고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남편과 함께 락토(유제품까지 먹는) 채식을 하고 있는 김모(29)씨는 올해 3월 시어머니에게 맡겼던 아이를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시어머니가 김씨 몰래 자꾸 아이에게 고기를 먹였기 때문. 김씨는 “시어머니는 좋은 마음으로 그러시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폭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채식을 결심한 후 ‘가출(?)‘을 감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학생 김준양(23)씨는 3년 전 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채식을 결심한 뒤 1년 만에 부모와 함께 살던 집을 나와 자취를 시작했다. 함께 식사를 하다 보니 채식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생각보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 비건 채식에서 페스코 채식으로 전환해야 했다”고 했다. 그는 “살던 집을 나와 채식주의자들끼리 모여 사는 사람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동물성 단백질은 활동량이 많은 성장기 아동에게 필수적”이라며 “일방적으로 채식을 결정하고 강요하기 보다는 건강을 위한 식단을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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