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공장∙동방극장에 이어
국내 최초 비누공장 ‘애경사’ 터
시민단체 반대에도 철거 강행
“문화유산 체계적인 보전 필요”
70년 역사를 지닌 건물을 허무는 데는 몇 시간이면 족했다. 인천 중구 송월동2가를 1948년부터 지켜온 2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 3채는 30일 오전 일부 외벽만 남긴 채 사라졌다. 시민과 상인, 시민예술단체들이 건물 철거 중단을 촉구한지 불과 하루가 지난 시점이었다.
중구는 이날 굴착기를 동원, 이들 건물을 철거했다. 송월동 동화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주차장을 만든다는 이유였다. 인천시와 문화재청의 요청으로 철거 작업은 수시간만에 중단됐지만 건물은 이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된 뒤였다.
중구가 철거한 건물들은 건축물 대장에 의하면 1948년 건립됐다. 하지만 손장원 재능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건물 양식은 1920~1930년대 것으로 추정된다. 손 교수는 “건축물로서나 그 역사적 용도에 있어서나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건물의 터에 더 주목하고 있다. 1912년 일본인이 설립한 국내 최초의 비누공장인 ‘애경사’가 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애경사는 1954년 채몽인씨가 인수해 애경유지공업으로 바뀌었고 뒤이어 애경그룹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중구는 “다른 근대건축물과 비교해 역사가 짧고 근대문화재로도 등록되지 않아 가치가 높지 않다”며 철거를 강행했다. 철거된 건물과 같은 해 지어진 중구 해안동1가 옛 대한통운 창고가 리모델링돼 문화시설인 인천아트플랫폼의 공연ㆍ전시장으로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근대건축물이 밀집된 인천의 대표적 원도심인 중구에서 역사가 오래된 건물들이 주차장조성을 이유로 헐린 것은 처음이 아니다.
31일 인천시립박물관이 2013년 발간한 인천 근ㆍ현대 도시유적 학술보고서에 따르면 1919년 창립한 조일(朝日ㆍ아사히) 양조회사의 중구 선화동 양조공장은 2012년 철거돼 주차장이 됐다. 조일양조회사는 남한 최초로 소주를 대량 생산했던 곳이지만 이제는 표지석 하나만이 남아있다. 1941년 중구 신포동에 건립돼 1960~7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동방극장도 비슷한 시기에 철거돼 주차장이 됐다.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등 단체들이 인천의 근대산업문화유산에 대한 전면적인 학술전수조사와 체계적인 보전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는 이유다.
장회숙 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 공동대표는 “인천 중구의 산업유산들은 마을 형태로, 집단적으로 남아있어 의미가 있는데 하나가 없어지면 그 가치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라며 “근대산업이 시작된 인천의 산업유산은 우리나라의 자산이기 때문에 지키고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어떻게 활용할지를 이제라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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