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기구 직원을 사칭해 수억원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자신들을 국제금융기구 관계자라고 속인 뒤 “5억 원을 맡기면, 원하는 만큼의 금액의 수표를 발급해주겠다”고 꾀어 자영업자 A(49)로부터 4억2,000여만원을 뜯어낸 문모(78)씨와 채모(55)씨, 계모(45)씨를 구속하고, 계씨의 비서 여성 박모(46)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3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문씨 등은 지난해 11월 국제금융기구 비서실장과 국제금융팀장, 국제금융코드자(상시 인출권자)로 소개하면서 A씨에게 접근했다. 이들은 A씨를 만난 자리에서 “지리산 벙커에 있는 본부 벙커에서 채권과 수표, 달러, 5만원권 등 지하자금이 실린 트럭이 있다”며 “이를 인수할 5억원을 빌려주면, 경기 오산시의 벙커로 가져와 즉시 사용 가능한 수표를 약 200억원어치 발행해주겠다”고 속였다. 특히 A씨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들이)청와대와도 밀접한 관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A씨는 이들의 제안을 받은 지 두 달 만인 지난 1월 4억2,000만원짜리 수표를 건넸다. 하지만 돈을 전달한 뒤 약속 이행을 차일피일 미루자, 두 달 뒤인 3월 이들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결과 문씨는 국제금융기구와는 무관한 동종 전과 10범이었으며, 벙커도, 트럭도 모두 거짓이었다. 이들은 A씨로부터 받은 수표를 소액권 수표로 쪼개 나눠가지고, 일부는 제3자에게 준 것으로도 확인됐다. 경찰은 해외로 달아난 공범 김모(58)씨를 지명수배해 행방을 쫓고 있으며, ‘할아버지’ 또는 ‘나 박사’ 등 사기 과정에서 언급된 인물의 존재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국제금융기구나 벙커, 지하자금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짧은 기간 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접근하는 것은 범죄일 가능성이 크다”며 “황당한 수법의 사기에 현혹돼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