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한라산이고, 한라산이 곧 제주다. 한라산이 제주에서 갖는 의미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실제로 제주의 거의 모든 마을에서 한라산이 보이기 때문에 제주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한라산을 보며 자란다. 한라산을 볼 수 없는 극히 일부 마을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늘 한라산을 보면서 자라왔기에 한라산에 대한 제주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어릴 적 그렇게 높아 보였던 마을 뒷산이, 객지에서 생활하다 성인이 된 후에 다시 보니 그렇게 낮을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육지의 흔한 산과는 다르다. 한라산은 어릴 때도 높은 산이었고, 타향살이하다 오랜만에 보더라도 역시나 높은 산이다.
제주에서 한라산을 이야기할 때 모든 사람들에게 변치 않는 진리가 하나 있다. ‘어느 곳에서 보는 한라산이 가장 아름다운지?’라는 질문에 답은 항상 같다.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이 자고 나란 마을에서 본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한라산은 그런 곳이다.
한라산 중턱에 대규모 개발계획이 진행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2021년까지 약 6조2,800억원을 투자해 제주시 오라2동 산46-2번지 일대 357만5,753㎡ 부지에 관광숙박시설, 골프장, 상업시설, 휴양문화시설 등을 조성한다는 ‘오라관광단지’ 사업이다. 투자 규모로 치면 제주 역사상 최대라는 제2공항 건설 사업비 4조1,000억원보다 훨씬 크다. 개발주체는 중국자본 제주차이나캐슬(JCC)이다.
문제는 사업 대상지가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의 경계선에서 불과 650m 정도 떨어진 해발 350~580m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도내 환경단체와 시민사회단체는 국립공원 턱밑에 상주 인구와 관광객을 포함해 6만여 명이 체류하는 도시가 들어서는 셈이라며 절대 불가를 외치고 있다.
제주도의회는 이미 오라관광단지 환경영향평가 동의안 처리와 관련해 두 차례나 제동을 걸었다. 또 5월23일 열린 환경도시위원회에서도 ‘심사 보류’ 결정을 내리고, 사업자와 제주도에 보완자료를 요구하고 나섰다. 의원들은 장기적으로 지하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오수 처리를 공공하수도와 연결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관과 환경 훼손 측면에서도 대안이 부족하고, 하루 3,600톤, 연간 130만톤이 넘는 물을 소비해 지하수 고갈이 우려된다는 점도 꼬집었다.
각계의 의견을 요약하면 한라산 중턱에 이런 대규모 시설물이 들어서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저지대는 상ㆍ하수를 공공상수도 및 오폐수 처리시설과 연결하면 되지만, 고지대에서 자체 처리하려면 문제가 발생한다. 또 오라관광단지 사업을 허가하면 앞으로 비슷한 개발행위가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크다.
도민 사회에선 한라산 중턱의 경관이 훼손되는 것도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개발예정지는 제주시내에서 한라산을 바라볼 때 백록담으로 이어지는 중턱에 위치한다. 자신이 나고 자랄 때부터 본 한라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망가지는 것이다. 이 사업은 애초 한라산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이런 정서를 전혀 감안하지 않았다. 개발에 따른 경제적 이득보다 한라산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는 데서 느끼는 심리적 손실이 더 크다는 말이다.
한라산을 개발할 때는 경관적 가치와 정서적 요인까지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한라산은 예부터 영주산(瀛洲山)이라 하여 신령스럽게 여겼다. 오늘날의 모습을 지켜온 것도 무분별한 개발행위를 항상 민감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산악관광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추진했던 1960년대 백록담 분화구 내 호텔건립계획, 영실 오백장군 일대의 방갈로 개발계획,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계획 등을 무산시킨 것이 좋은 예다. 이러한 반대 운동 덕분에 오늘날 한라산은 세계자연유산으로서 위상을 지킬 수 있었다. 오라관광단지 사업 또한 장기적인 안목에서 득일지 실일지 고민하고,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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