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도 호평
정책ㆍ사실검증 심층 보도는 부족
비정규직 등 문제 제기 넘어서
어떻게 고쳐나갈지 해법 제시를
박근혜 정부 실패엔 언론도 책임
정치시스템 취재 방식 바뀌어야
한국일보 독자권익위원회가 17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 대회의실에서 5월 회의를 열어 지난 한달 대통령 선거 관련 지면을 평가하고 개선점을 논의했다. 회의에는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 교수인 이재경 위원장을 비롯 독자위원인 구현모(고려대 대학원 재학)씨, 김기주 한국리서치 이사, 오연조 상상스쿨 출판사 대표, 이윤정 재단법인 여시재 SD와 이계성 한국일보 논설실장이 참석했다. 류재성 계명대 교수, 조원희 변호사는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이재경
대선 관련 보도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구현모
참여연대와 공동기획 한 ‘대선후보에게 묻는다’가 좋았다. 대선후보 TV토론은 이목은 쏠리지만 사실 허공에 떠있는 말밖에 없다. ‘대선후보에게 묻는다’ 기사는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를 비교할 수 있었다. ‘캠프 파워맨 열전’ 기사도 재미있게 읽었다. 신문기사이기 때문에 TV토론회를 후속 보도해주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정보를 많이 주고 있고 ‘누가 누가 어떻게 다르구나’를 잘 보여줬다.
4월 20일자에 장애 등급제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대선이 너무 급박하게 치러지는 바람에 언론이 의제를 선정하거나 주도적으로 끌어가지 못하는 환경이었다. 장애등급제와 르포는 이런 공백을 잘 채워줬다.
5월 5일자 ‘소득 주도 성장 논하려면 임금 통계부터 일원화해야’ 기사는 후보들의 공통적인 맹점을 지적해 좋았다. 전반적으로 대선관련 기사는 만족했다.
김기주
대선 기사가 그리 많지 않았고 정치, 행정, 정책 관련 기사의 비중이 컸다. 중요한 대선 기사가 생각보다 적었다. 평균 세 개면 정도인데, 어떤 날은 선거기간 중인데도 두 면밖에 할애하지 않았다. 두 번째, 대선 주자 별 공약을 비교해 일주일에 두 세 번 다뤘다. 잘 정리된 기사로 보여진다. 독자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공약의 방향성을 적절하게 제시했나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독자들은 대선주자들의 뜻보다 한국일보의 입장이 어떤지 알고 싶어 한다.
오연조
언론은 선거 때마다 유권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정치공학적 여론몰이, 경마식 중계보도로 잘못된 정보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갈등 이슈가 되는 일이 많았다. 한국일보 기사는 편파적 내용이 많지 않았지만 유권자들이 더 알고 싶어하는 정책, 사실 검증, 여론 소개가 심층적으로 보도되지는 않았다. 대선미디어감시연대 자료를 보면, 따옴표 보도와 익명 보도가 가장 많은 신문 1위가 조선일보이고 2위가 한국일보였다. 헤드라인을 뽑을 때 따옴표 대신 자체적으로 어젠다를 던지고 분석하는 기사가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 주말의 지면은 이미지로 보기 좋게 편집되어 신선했다. ‘문 타박상 안 골절상’이라는 헤드라인을 심플하게 넣으며 그래픽으로 처리한 지면이 눈에 띄었다. 대선 후 기사 중에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시리즈가 좋았다. 서로 다른 5인의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 각자의 생각을 담아 쓴 편지는 신선했다. ‘Do Not 리스트’는 매우 과감한 시도였다.
이윤정
대선주자들 검증 기사의 제목이 ‘공방전’ ‘논란’에 그쳤다. 독자의 판단 기준이 될 만한 기사는 별로 없었다. 여야가 아이템을 가지고 주고 받는 이야기들을 중계하는 데만 그쳐 아쉬웠다. 독자들을 속 시원하게 해주는, 대선주자들을 검증해주는 기사를 취재해서 밝혀 내지 못하나. 후보 검증과 관련된 기획 특종이 아쉽다. 선거는 정책도 좋지만 사실 인물을 보고 뽑는다.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하는지는 공약만큼 중요하다. 누구를 편파적으로 지지하라는 게 아니라 신문이 독자들의 판단 기준이 되는 가이드라인 정도는 제시해 주어야 한다.
‘문빠(문재인 극성 지지자)’ 논란의 경우 이들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학습된 지지자들이다. 문빠 감성이, 그 예민함의 수준이 많이 올라갔다. 기자들이 문빠를 대상화하고 비난만 하면 적대적인 감정만 드러나게 된다. 정치에 대한 관심과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방향으로 생각해야 된다. 그만큼 수준 높은 언론 기사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고 해석해도 될 것 같다.
김기주
오프라인 신문이 가야 될 방향성이 기로에 서 있다. 한국일보는 다른 신문과 비교해 굉장히 살얼음판을 걷는 듯이 전체 편집구성이 되고 있다. 사회 문화 부분만 한국일보 색이 강하게 나타난다. 자신감을 가지고 강하게 가는 것이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줄 것이다.
이윤정
여러 차례 TV토론 중 중요한 시기가 ‘주적 논쟁’이 불거질 때였다. 보수 신문들이 이 주제를 어떻게 1면 톱에서 다룰지 주의 깊게 봤다. 한국일보는 이틀 연속 ‘해묵은 주적 논쟁’이라는 제목 등으로, 색깔론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보여줬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구태 정치에는 더 강한 의견을 보여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4월 26일자 6면 ‘문재인, …고압적 자세 논란’ 기사는 ‘이 보세요’ 같은 표현으로 후보자 본인이 빌미를 줬지만 그것에 비해서는 스트레이트 기사 안에 감정적인 단어가 너무 많았다. 유승민 후보의 딸 유담씨 관련 기사는 지나치게 미모를 다뤄 읽기에 불편했다.
이계성
유담씨 관련해서 중국에서도 인기가 ‘짱‘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어떻게 보면 사드에 관해서 가장 강경한 사람이 유승민 후보였다.(웃음)
김기주
후보들 자녀들이 ‘훈남’이니 하는 기사는 사회 양극단의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 온라인은 모르겠지만 종이신문에 쓰는 것은 지면의 낭비다.
이재경
대선보도에서 한국일보가 다른 신문보다 못하지는 않았고, 무난했다. 선거 이후 ‘Do Not 리스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는 굉장히 좋은 시선으로 봤다. 선거 이후를 보면 축하 파티 느낌으로 다들 기사를 쓴다. ‘Do Not 리스트’는 정신을 차리고 이슈를 제기하는 그런 특징이 있어 신선하고 좋다. 그리고 신문에 철자 틀린 것이 생각보다 많다. 교열 파트가 예전만큼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선거 국면으로 돌아가서 보면, 결국 신문이 구독자를 잃어버리고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하면 관심 받을지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중요하다. 남들이 다 하는 기사 말고 무엇을 어젠다로 내세울 지 고민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기획 취재를 상당히 깊이 있게 하면 어떨지, 강력하게 어젠다를 이끌 힘을 보여주면 좋았겠다. 민주주의가 30년밖에 안되어 보도 역량이 선진국에 비해서 떨어진다. 앞으로 선거는 계속 있다. 역량을 체계적으로 쌓아갈 그런 희망을 가져봤다.
구현모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온라인 뉴스매체 ‘AJ+’에서 ‘트럼프 트래커(Trump Tracker)’란 이름으로 오늘 정부가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매일매일 뉴스레터 형식으로 서비스한다. 우리 언론에도 ‘문재인 트래커’가 꾸준히 있었으면 좋겠다.
이재경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기자직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다시 기자를 하고 싶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실패에 한국 언론의 책임도 상당히 있다. 신문사는 많은데 권력을 제대로 감시해 왔나. 이런 부분에서 성찰적 진단이 필요하다. 국가의 정보 컨트롤 시스템, 정부와 언론의 관계, 이 부분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청와대에서 브리핑하는 방식을 바꿔가고 있지만 그들이 하는 대로 따라 가는 게 좋은 것인지,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때 출입기자 시스템 문제가 뭐였는지, 왜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저렇게 젊은지 생각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부에서 기자들을 대하는 방식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미국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권력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권력이 공고화되기 전에 바꾸어야 한다. 국회도 마찬가지로 정치시스템을 취재하는 방식을 이번 기회에 손을 봐야 한다.
김기주
정보 주도권을 정부가 갖고 있어 기자들이 깊게 추적하지 못하면 좋은 기사를 쓸 수 없는 구조다. 연륜이 깊은 분이 청와대를 출입해 질문하면 누가 일방적으로 특정한 이슈만을 말할 수 있는가. 언론도 변화가 필요하면 기사가 아닌 행동으로 옮겼으면 한다.
오연조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질문을 잃어버린 듯하다. 적절한 질문의 수준도 문제이지만 일단, 질문 자체를 하지 않는다. 최근 청와대에서 인선 때 오히려 기자들에게 ‘질문 없으신가요’라고 묻는 모습은 참으로 낯설었다. 사회가 좀더 건강하게 소통하려면 궁금하면 묻고 책임자는 답하는 문화가 상식이 되어야 한다.
이윤정
아무리 ‘기레기’라고 욕을 해도 역시 기자가 일을 해 줘야 사회가 바뀐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질문을 못하는 문제는 독자들을 가장 화나게 한다. 출입처 중계식 보도는 젊은 기자가 하더라도 대선이나 새 정권 출범 이런 부분은 연륜, 경험이 있는 분들이 다뤄 독자들이 요구하는 눈높이를 맞춰줘야 한다.
오연조
온라인에서 독자들이 팩트, 정보를 넘쳐나게 보고 듣는다. 종이 신문이 살아 남는 방법은 기획 취재나 선택과 집중을 잘한 심층 취재라 생각한다.
김기주
그 점에 연결해서 말하면 한국일보는 기획기사 콘텐츠가 좋다. 그런데 본론적인 부분에서 양이 너무 많고 길다. 독자들은 2000년대 초반, 2010년도 초반까지 통 큰 편집을 원했다. 최근 독자들의 생각은 달라졌다. 신문은 주요 이슈 전달자로의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니즈(needs)가 최근에 나오고 있다. 장애인 보행법 관련해서 한 페이지 크게 들어갔는데 그런 식의 내용들은 다른 언론에서 거의 한번씩 다뤘다. 지면을 쪼개서 다양한 정보를 민감하게 전달했으면 좋겠다. 지면의 안타까움이 있다.
구현모
5월 1일 노동절에 비정규직 관련 기사가 게재됐다. 박근혜 정부 이후 비정규직 이야기는 계속해 나왔다. 하지만 ‘비정규직 힘들다’ ‘비정규직 안 좋다’ 이런 이야기들은 지겹다. 미국 언론에서 2015년부터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단순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그럼 어떻게 고쳐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뉴욕타임스, BBC가 그렇게 보도를 한다. 우리도 사실을 단순 전달만 할 것이 아니라 깊게 들어가 해법을 이야기 하면 좋겠다.
이윤정
한국만평의 ‘최순실 만평’은 온라인에서 화제가 많이 됐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중심의 언론 시대에는 모든 기사가 낱개 아이템으로 소화된다. 잘된 기획 기사 하나, 특종 하나, 칼럼 하나, 사진 하나, 만평 한방, 스타 기자 한 명이 한국일보의 이미지를 좌우한다. 수준 높은 한방의 기사, 칼럼으로 ‘기레기’라 비난하는 독자들의 입을 다물게 해줘야 한다.
김기주
지금의 지면 분량으로 한국 사회의 다양성, 기획기사, 출입처의 기사까지 선별해서 다뤄야 한다. 그러기에는 지면이 너무 적고 특히 경제면이 상대적으로 적다. 정책기사를 안 읽는 이유는 수용자가 아닌 전달자 입장이라 그렇다. 증세를 논하는데 국민이 감당할 수 있는지, 나한테 돌아오는 게 무엇인지 직접 알 수 있는 기사가 없다. 국민 연금 수급금액 130만원이 적다고 언론이 말하지만 이는 독자와 거리가 있다.
이윤정
정책 분석은 수용자 입장에서 기사를 써야 한다. 대선후보 공약들로 내 삶이, 내 생활이 어떻게 바뀌는지 조금 더 와 닿게 설명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독자 입장에서 ‘비정규직 문제’ ‘공무원 연금 문제’ ‘출산 휴직 육아 휴직 문제’ 등 어려운 문제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기준을 찾을 수 있게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줘야 한다. 어렵고 재미없는 내용은 독자 입장에서 출발해 풀어야 한다.
정리=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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