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서 KT회장 승승장구
정권 바뀌며 먼지떨이식 수사
새로운 정권서 4번째 재판 앞둬
131억원대 횡령ㆍ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석채(72) 전 KT 회장이 서울고법에서 4번째 재판을 받게 됐다. 대법원이 30일 “횡령 혐의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사실상 무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2013년 10월 세 차례 압수수색을 받으며 KT 회장직에서 물러난 그는 3년 7개월째 지루하고도 피를 말리는 법정 역정(歷程)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전 회장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보통신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당시 KT가 ‘2년 내 경쟁사 임직원을 했던 인물은 KT 대표이사가 될 수 없다’는 내용의 정관까지 바꿔준 덕에 KT 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를 두고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측에 힘을 보탠 김 전 대통령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승승장구하던 이 전 회장은 정권이 바뀌자 먼지떨이식 수사를 받았다. 당시 이 전 회장이 자리 버티기에 나서자 보복수사라는 뒷말까지 나왔다. 이 전 회장이 KT에 재직 중이던 2013년 10월부터 검찰은 KT 본사와 임직원 자택 등을 세 차례 압수수색 했다. 이후 검찰은 이 전 회장이 재임시절 7촌인 유모씨와 KT가 공동 설립한 OIC랭귀지비주얼(현 KT OIC) 등 사업체 3곳의 주식을 비싸게 매입하는 방식으로 KT에 103억5,000만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그를 재판에 넘겼다.
2015년 9월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3개 사업체의 실제 주식 가치가 낮았다며 배임 혐의를 적용했지만 재판부는 “검찰이 현재보다 미래가치를 보는 벤처투자 특성을 간과했다”고 봤다. 2009∼2013년 임원들 수당인 ‘역할급’ 27억5,000만원 중 일부를 돌려받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쓴 혐의도 무죄가 됐다. 재판부는 비자금 조성은 인정했으나 이 중 11억7,000만원을 개인적으로 썼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본 것이다. 그가 사용한 760차례의 축의ㆍ부의금 중 상당수가 당시 KT의 주요 고객이나 주주, 장래 KT 영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2심은 1심을 뒤집고 횡령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개인 자금과 유사하게 비자금을 함부로 사용한 점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에게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그로부터 1년 만인 이날 대법원은 “조성된 비자금 중 일부가 회사를 위해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횡령 혐의에 대한 항소심 판단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유죄 근거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비자금 액수와 사용내역을 고려하면 상당부분이 회사를 위해 지출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비자금 사용 내역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다고 해서 곧바로 개인적으로 썼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봤다.
이 전 회장의 변호인단 소속 한 변호사는 “아직 파기환송심을 앞두고 있어 무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면 수사 대상이 됐던 KT가 보복수사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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