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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풍운의 독재자’ 노리에가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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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풍운의 독재자’ 노리에가 사망

입력
2017.05.30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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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미국에서 마약 밀매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될 당시 마누엘 노리에가의 모습. AP 자료사진
1990년 미국에서 마약 밀매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될 당시 마누엘 노리에가의 모습. AP 자료사진

1980년대 중미의 소국 파나마를 지배했던 독재자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가 83세 나이로 사망했다.

30일 외신에 따르면 노리에가는 3월 뇌종양 수술을 받고 투병을 하던 중 29일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노리에가는 냉전시대를 살며 권력의 정점과 밑바닥을 함께 경험한 ‘풍운아’로 불린다. 1934년 파나마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태어난 그는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정보계통에 투신했다. 노리에가는 자신의 정보력을 십분 활용해 1960~70년대 중남미 공산주의 확산을 막으려는 미국, 정확히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하수인으로 일했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정권, 산디니스타 니카라과 정권 등 좌파정부 교란에 적극 협력하며 미 정부의 신임을 얻었다.

노리에가는 81년 독재자 오마르 토리호스가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실권을 장악하고 83년 파나마군 최고사령관에 올랐다. 그는 공식 대통령으로 선출된 적은 없지만 정권을 계승한 니콜라스 바를레타 대통령 등을 꼭두각시로 내세워 6년간 철권통치를 휘둘렀다. 정치적 숙청을 일삼고, 마약사업에 적극 관여해 부정부패도 극심했다.

하지만 국내외의 반(反)노리에가 운동이 거세지면서 미국도 노리에가를 포기했다. 미 정부는 88년 마약밀매 혐의로 기소한 노리에가가 버티자 이듬해 12월 파나마를 전격 침공해 군부를 타도했다. 당시 미군은 바티칸대사관에 피신해 있던 노리에가에게 대형 스피커로 헤비메탈 음악을 트는 ‘소음 공격’을 퍼부어 투항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미국으로 압송된 그는 마약거래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돼 마이애미 연방교도소에서 2010년까지 복역했다.

이후 삶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프랑스에서 돈세탁 혐의로 복역하다 2011년 고국으로 추방됐지만 파나마 법원은 다시 그에게 정적 살해 등의 죄를 물어 징역 60년형을 선고했다. 올 1월 뇌종양이 악화돼 풀려났으나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는 등 노리에가는 숨질 때까지 자유를 얻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86년 미국이 니카라과의 우익 반군 콘트라에 자금을 지원한 ‘이란-콘트라’ 사건 당시 노리에가가 미국의 미움을 사 축출됐다며 그를 냉전의 희생양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카를로스 바렐라 파나마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글을 올려 “노리에가의 죽음으로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닫는다”며 한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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