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볼티모어, 뉴올리언스시가 여기저기 남아 있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 상징 기념물을 잇따라 철거하고 있다고 한다. 뉴올리언스는 최근 남부연합군의 승전을 축하해 세운 기념비와 남부연합 대통령을 지낸 제퍼슨 데이비스, 남군 장군 피에르 귀스타브 투탕 보르가르, 전쟁영웅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을 잇따라 철거했다. 볼티모어시는 노예제도 옹호 판결을 내린 로저 태닛 전 대법원장의 동상 철거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흑인 인권을 경시했던 어두운 과거사를 지우겠다는 것이다.
▦ 정권이 바뀌면 과거 정권의 상징물이 눈총을 받는다. 소련 붕괴 후 레닌 동상 철거가 대표적이다. 탄핵으로 파면된 박근혜의 경우 방문 흔적을 담은 표지석을 없애자는 소리가 나왔다. 그런데 실은 표지석보다 훨씬 강렬하게 지난 정권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물이 있다. 변형된 태극 문양 형태의 정부 통합 로고다. 이 로고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면서 정부 부처가 쪼개지고 합쳐질 때마다 새 로고 만드는 비용을 줄이자고 지난해 완성해 적용되었다. 하지만 박근혜ㆍ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뒤 제작 과정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되었다.
▦ 과정은 차치하고 결과만 봐도 이 정부 로고는 다양성과 창의를 존중하자는 시대정신에 걸맞지 않는다. 부처마다 다른 로고를 사용해 낭비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나, 조직이 쪼개지거나 통합될 가능성이 적은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등에까지 이 로고를 일률적으로 적용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지적도 많았다. 통합 로고 디자인이나 적용 결과를 보면 한마디로 ‘복고적 전체주의’가 연상된다. 정부기관의 로고를 통일하자면서 정작 힘 있다는 국가정보원, 국방부, 검찰청, 경찰청 같은 곳은 이 로고를 쓰지도 않는다.
▦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를 둘러싼 철책에 이 로고가 빼곡하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그 철책 위로 건물 전체를 감싸듯 게양된 수십 개의 지나치게 많은 태극기와 함께 볼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서울광장 일부를 4개월 동안 차지하고 있던 보수단체 천막이 30일 철거돼 그 자리에 이전처럼 잔디를 심는다고 한다. 지금까지 들인 수십억 원이 아깝지만 행정자치부, 문화체육관광부 새 장관이 적어도 문화기관에만은 일렬종대로 강요된 이 정부 로고를 폐기하고 다양하게 옛 로고를 쓸 수 있도록 해 주면 좋겠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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