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국제영화제 출장 중 지난 18일(현지시간) 심장마비로 별세한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57) 겸 수석프로그래머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비롯해 아시아 각지의 영화인들이 한달음에 부산으로 건너와 고인을 애도하고, 크나큰 슬픔에 잠긴 유족과 부산영화제 관계자들, 한국 영화인들을 위로했다.
고인의 장례는 27일부터 사흘간 부산영화제장으로 치러졌다. 빈소가 마련된 부산 수영구 서호병원 장례식장에는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부산영화제 사무국에 따르면 김동호 부산영화제 이사장과 강수연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임권택 감독, 정지영 감독, 이창동 감독, 배우 안성기 등 여러 영화인들이 고인을 배웅했다. 생전 고인과 각별한 우정을 쌓았던 아시아 영화인들도 서둘러 부산행 비행기에 올랐다. 고레에다 감독과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장례 뿐 아니라 29일 발인 이후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영결식에까지 참석했다. 재일동포 이상일 감독은 장례 첫날부터 사흘 내내 빈소를 찾았다고 한다. 부산영화제 출범 때부터 20여년간 고인과 교류해 온 대만의 차이밍량 감독과 대만의 국민배우 양구이메이도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비통해했다. 양구이메이는 영결식에서 해외 인사를 대표해 추도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아시아 영화인들은 부산영화제가 아시아 대표 영화제로 성장하는 데 초석을 닦은 고인의 헌신을 되새겼다. 그리고 20년 넘게 아시아 영화 담당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아시아 영화를 적극 발굴하고 세계로 진출시키는 등 한국 영화를 넘어 아시아 영화 전체의 발전에 공헌한 고인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고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1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개인 계정에 글을 남겨 “그가 없었다면 부산영화제는 지금처럼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부산영화제의) 재건에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언제나 온화한 미소로 맞이해주는 그의 존재는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과 평온을 느끼게 했다”고 회고했다. 29일 영결식 당일에는 “영정에 손을 모으고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고 (고인에게) 전했다”는 글로 고인을 기렸다.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으로 한국에도 친숙한 고레에다 감독은 부산영화제와 특별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해마다 신작 영화를 들고 부산을 찾았고 지난해에는 초청작이 없었음에도 이창동 감독, 대만의 허우샤오시엔 감독 등과 특별대담을 갖고 정부와 갈등을 겪던 부산영화제에 대한 연대와 지지 의사를 밝혔다.
영결식에 참석한 재일동포 배우이자 프로듀서인 스기노 키키는 27일 SNS에 한국어로 추모글을 올렸다. 그는 “김지석 선생님은 아무 경력도 없던 저를 처음으로 인정해주셔서 제가 영화계에서 도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셨던 분”이라며 “아직도 마음을 정리하기 힘들지만 선생님에 대한 글을 아사히신문에 썼습니다”고 밝혔다. 그리고 아사히신문에 기고한 자신의 칼럼을 함께 소개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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