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이용해 루게릭ㆍ파킨슨병 등 치료
임상연구 통해 줄기세포치료법 효과 입증
‘왕십리, 밤거리에 구슬프게 비가 내리면 눈물을 삼키려 술을 마신다. 옛 사랑을 마신다’ 가수 김흥국이 부른 ‘59년 왕십리’다. 김흥국에게 왕십리는 눈물 나게 옛 사랑이 떠오르는 곳일지 몰라도 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축복의 장소다. 한양대병원 세포치료센터가 있기 때문이다.
한양대병원 서관 7층에 자리 잡은 세포치료센터에서는 루게릭병 파킨슨병 저산소성뇌손상 루푸스 등 현재까지 치료법이 없는 난치성질환을 치료하고 있다. 난치성질환을 치료하는 센터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생명은 사랑으로부터, 사랑은 한양으로부터’라는 표어처럼 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를 사랑으로 보살피겠다는 의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세포치료센터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센터에서는 줄기세포를 이용해 난치성질환을 치료한다. 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로 구분된다. 센터에서는 난소를 사용해야 돼 윤리적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 대신 성체줄기세포(자가골수유래 줄기세포)를 이용한 연구와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 치료에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김승현(55) 신경과 교수가 이끌고 있는 ‘루게릭병 클리닉’이 대표적이다.
세계가 인정하는 루게릭병 클리닉
루게릭병 클리닉은 2005년부터 특수 진료와 다학제진료시스템을 구축해 환자를 관리하고 있다. 2014년 말까지 클리닉에 등록ㆍ관리되고 있는 환자만 1,400명에 달한다.
루게릭병 클리닉이 세계 최고 클리닉으로 성장한 것은 김 교수의 선견지명 때문이다. 김 교수는 2000년대 초반부터 루게릭병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등 신경계 퇴행성질환 치료에 집중했다.
김 교수는 신경계 퇴행성질환은 문명과 의료기술을 고도로 발달시킨 인류의 ‘업’이라고 말한다. 문명과 의료기술 발달로 인류는 과거보다 오래 살 수 있게 됐지만 그로 인해 과부하가 걸린 뇌의 퇴행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미세먼지, 대기오염 등 과거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환경인자까지 더해져 인간의 신경계가 망가지고 있다”며 “신경계 퇴행성질환은 앞으로 암보다 무서운 질환으로 인류를 괴롭힐 것”이라고 말했다.
루게릭병은 다른 질환보다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진행속도가 빠르고 예후가 좋지 않다. 뇌와 척수에 존재하는 운동신경세포들이 급속히 손상돼 팔다리 근력이 약해지고, 근육이 마른다. 숨골이 위치한 뇌간 부위의 운동신경세포까지 망가지면 호흡 자체가 어려워 사망에 이르게 된다. 김 교수가 줄기세포 치료에 열정을 쏟고 있는 이유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통 받고 있는 루게릭병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다.
김 교수는 2010~2013년 72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임상시험(제1상 8명ㆍ제2상 64명)을 통해 줄기세포 치료효과를 입증, 2014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루게릭병 줄기세포치료제 품목허가를 받았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 승인은 세계 최초로 루게릭병 치료에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김 교수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루게릭병의 이상적 치료 목표는 성체줄기세포가 손상된 운동신경세포를 대체해 손상된 근육기능을 회복하는데 있다. 하지만 현재 줄기세포를 이용한 임상치료는 성체줄기세포를 환자에게 투여해 급속도로 진행되는 운동신경손상을 최대한 억제하는데 국한돼 있다.
김 교수는 “줄기세포치료 연구를 텔레비전 역사와 비교하면 흑백 텔레비전 시대”라며 “환자에게 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주기보다 환자가 남의 도움 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센터에서는 루게릭병과 함께 파킨슨병 클리닉(김희태 신경과 교수), 저산소성 뇌손상 클리닉(김현영 신경과 교수), 루푸스 클리닉(배상철 류마티스내과 교수), 제대혈 클리닉(이영호 소아청소년과 교수)을 운영하고 있다. 센터 측은 “최동호 일반외과 교수가 이끌고 있는 간질환 세포치료도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이라고 전했다.
난치성질환 환자들이 세포치료센터를 찾는 것은 환자를 위한 배려와 관심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침대, 휠체어가 문에 걸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진료실, 진료와 상담을 센터에서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시스템 등 환자만족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었다.
김 교수는 “보건의료시스템에서 소외되기 쉬운 난치성질환 환자를 보살피는 센터가 될 것”이라며 “사회ㆍ국가 차원에서 난치성질환 환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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