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군, 황유미. 우리 사회에 기억되는 두 청년노동자의 이름이다. 김군이 서울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지는 1년이 됐고, 그가 죽기 10년 전 황유미씨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다. 하지만 지난 27일 서울 구의역에서 열린 김군 1주기 추모식, 지난 3월 3일 경기 수원 삼성전자 앞에서 열린 황씨 10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이들이 남긴 말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였다.
황씨와 김군, 그들의 ‘기억된 죽음’ 사이에선 기억되지 못한 또 다른 청년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졌다. 위험한 곳에서 안전장비도 없이 일해야 했고 목숨을 잃은 이들의 사연들만 반복됐다.
청년, 가장 위험한 곳에 투입되다
김군이 항상 사고 위험에 노출된 철로 위 작업을 진행한 것처럼, 청년 노동자들은 가장 위험한 곳에 먼저 투입돼 사고를 당했다.
지난 2013년 8월 5일, 경북 문경 회룡저수지 공사장에서 일하던 이모(당시 19세)군의 죽음이 그랬다. 배수관 누수점검을 하던 이씨는 배수관 내부를 확인하는 폐쇄회로(CC)TV 로봇이 장애물에 걸려 움직이지 않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지름 150㎝의 좁고 어두운 배수관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지하 50m 지점에서 산소부족으로 질식한 이군은 정신을 잃고 떨어져 익사했다.
배수관은 애초부터 유독가스가 많아 로봇으로 작업을 하던 곳이지만, 이군보다 경력이 많은 작업자들은 일한 지 5일 밖에 안된 그를 위험한 현장으로 보냈다. 이후 사고조사에서 현장소장은 “다른 작업자들이 무서워서 직접 정비에 나서지 않아 이군을 보냈다”고 실토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여름방학 동안 하도급업체에서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군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안전장치ㆍ안전교육 없는 현장
이군이 사망하기 6개월 전인 2013년 2월, 창원의 한 제조업체에서는 탱크용접작업을 하던 노모(당시 26세)씨가 화재로 사망했다. 당시 그는 밀폐된 원통형 탱크 안에 들어가 보수작업을 하면서도 화재를 막는 용접전용 작업복이 아닌 불에 잘 타는 재질의 옷을 입었다. 경찰의 현장 조사 결과, 노씨도 대부분의 용접작업자들처럼 전용 작업복을 입지 않고 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장치와 안전교육 부재로 일어난 청년노동자들의 산업재해는 비일비재하다. 김군이 사고를 당하기 1년 전인 2015년 8월 29일에도 스크린도어 정비 하청업체인 유진메트로컴 소속 조모(당시 29세)씨가 정비 도중 열차에 치어 사망했다. 조씨의 사고는 김군의 사고와 유사했다. 2인 1조가 원칙인 작업에 조씨 역시 혼자 출동했고, 역 직원을 작업감독으로 배치하는 등 안전 매뉴얼이 있었지만 무시됐다.
황유미씨처럼 자신이 작업하는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알지 못한 채 사고를 당하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2월 부천의 한 휴대폰부품공장에서 일하던 파견노동자 김모(당시 28세)씨 등 5명은 중추신경계 장애를 일으키는 메틸알코올로 작업을 진행하는 도중, 실명 위기에 처했다. 공장은 ‘몇 달 지나면 떠날’ 파견노동자들에게 보호장구 지급은 커녕 화학물질 안전교육도 생략했다. 결국 김씨 등은 무방비상태로 위험에 노출된 셈이었다.
법정근로시간은 말 뿐, ‘열정페이’가 가져온 죽음
야근과 특근을 당연시하는 근로환경 탓에 죽음으로 내몰린 청년들도 적지 않다. 2013년 10월 5일 구미의 대기업 협력업체 J사에서 일하던 파견노동자 유모(당시 21세)씨는 입사 3개월 만에 사망했다. 사인은 과로로 인한 돌연사. 그는 평균 주68시간 일했고, 한 달에 사흘 정도 쉬는 생활을 반복했다. 개인별 작업량이 낮거나 휴무가 많으면 ‘근태성적’을 이유로 파견직을 쉽게 해고했기 때문에 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과로가 안전재해로 이어진 사례도 나왔다. 2012년 9월 정읍의 한 공장에서는 용광로 작업 도중 쇳물 운반기계가 뒤집혀 직원 박모(당시 28세) 씨와 허모(당시 29세)씨가 사망했다. 기계가 뒤집힌 건 작업자의 실수였다. 하지만 당시 두 직원은 5일 연속 야간 근무를 한 뒤 회사에서 한 차례 특별근무를 요구해 주말 추가근무를 하던 상황이었다. 과다근무로 인한 피로가 참사를 불러온 셈이다.
과로와 업무 압박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2013년 4월에는 D금융사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최모(당시 29세)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씨는 판매 실적이 좋으면 평가 후 정규직으로 전환해 준다는 약속을 믿고 월급 100만원을 받으며 금융상품 영업을 했다. 하지만 그의 고용형태는 사실상 4대 보험을 보장받지 못하는 ‘개인사업자’였고 정규직보다 더한 실적 압박을 받았다. 과로로 천공 수술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지만 그는 ‘동기들에 비해 실적이 뒤쳐지는 것 같다’며 괴로워하면서 입사 42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빨리빨리’와 맞바꾼 생명들
이윤을 중시하는 사회가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례도 허다하다. ‘30분 배달제’란 서비스를 지키려다 사고를 당한 배달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0년 12월 12일 오후 피자배달원 최모(당시 24세)씨는 서울 금천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다 택시에 충돌해 사망했다. 배달시간을 맞추기 위해 신호가 바뀌자마자 바로 출발해 변을 당했다. 대학 4학년이지만 부족한 학비를 벌기 위해 피자배달을 하던 중에 일어난 참사였다. 이듬해 2월 서울 영등포구에서 김모(당시 19세)군이 역시 피자배달을 하다가 시내버스와 충돌해 사망했다. 역시 대학 입학 1개월을 앞두고 등록금 마련에 나섰다가 당한 사고였다.
두 청년의 사망으로 도미노피자 등 여러 피자 체인점들이 비인간적인 ‘30분 배달 보증제’를 폐지했다. 하지만 5년 후인 2016년 비슷한 제도가 부활했고, 지난해 6월 1일 새벽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박모(당시 24세)군이 택시와 충돌해 또 숨졌다. 최씨는 당시 일하던 패스트푸드점이 내걸던 ‘20분 배달제’를 지키기 위해 어긴 신호 위반이 화근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 27일 김군의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윤지영 공익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경영효율화라는 미명하에 이어진 이윤 극대화와 비용 절감을 부담을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청년들이 모두 떠 안고 있다”며 “우리사회 곳곳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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