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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의 고전산책] 소하(蕭何)의 그림자 전략

입력
2017.05.2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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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대업을 이루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소하다. 패군(沛郡) 풍현(豊縣) 사람으로 친구 유방이 기병할 때 자금을 대줬고, 초패왕 항우와의 힘겨운 7년 전쟁에서 운송보급로 확보와 요충지 관중 방어로 유방의 걱정을 크게 덜어주었다.

유방이 항우를 이겨 진나라에 입성할 때도, 소하는 남들이 거들떠 보지 않던 승상부(丞相府)와 어사부(御史府)의 법령과 도서를 입수, 요새 위치와 인구 등 진나라 제반 상황을 알 수 있게 해 고조의 천하경영에 힘을 보탰다. 법률에도 밝아 진나라 법률을 모태로 법률서인 <구장률九章律>도 썼다.

인재를 알아보는 눈도 매서웠다. 한신(韓信)이 말 실수로 눈밖에 나서 갖은 홀대를 겪다 참지 못해 도망치자 그를 끝까지 따라가 다시 데려왔다. 그깟 형편없는 자를 쫓아갔느냐는 고조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과 같은 말로 한신을 천거했다. “여러 장수들은 쉽게 얻을 수 있으나 한신과 같은 자는 나라의 둘도 없는 선비입니다. 왕께서 한중의 왕으로만 만족하신다면 한신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만, 반드시 천하를 놓고 다투려 하신다면 한신이 아니고는 함께 일을 꾀할 사람이 없습니다. 왕의 생각이 어느 쪽에 있는가에 달린 문제입니다. (諸將易得耳. 至如信者, 國士無雙. 王必欲長王漢中, 無所事信;必欲爭天下, 非信無所與計事者. 顧王策安所決耳. <사기> ‘회음후열전’)

소하 덕분에 한신은 과거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수모와 마을의 빨래하는 아낙들에게 밥이나 빌어먹던 처지에서 신분이 수직상승, 목욕재계한 경건한 모습의 고조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훗날 일등공신 반열에 들었다.

소하라고 벼슬길이 순탄하기만 했을까. 문관이어서 도필리(刀筆吏)라는 비아냥을 들었고,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최고 권력자의 눈에 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설치는 무관들 틈에서 지혜롭게 처신해야 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소하를 가장 강력하게 견제한 사람은 다름 아닌 고조였다. 고조는 본거지 관중을 비우고 전쟁을 하다 보니 혹시 소하가 모반을 일으킬까 의심이 들어 사신을 보내 위로하는 척하며 감시했다. 소하는 포생(鮑生)이란 자의 충고를 받아들여 자신의 자식과 형제들을 고조에게 인질로 보내 재신임을 얻게 된다. 결국 그는 장량이나 한신 등 200여 명의 개국 공신 중에서 야전 사령관 조참(趙參)을 제치고 최고의 예우를 받는다. 다음과 같은 말은 고조가 해준 찬사였다.

“사냥에서 들짐승과 토끼를 쫓아가 죽이는 것은 사냥개이지만, 개 줄을 풀어 짐승이 있는 곳을 알려 주는 것은 사람이오. 지금 여러분들은 한갓 들짐승에게만 달려갈 수 있는 자들뿐이니, 공로는 마치 사냥개와 같소. 소하로 말하면 개의 줄을 놓아 방향을 알려 주니, 공로는 사냥꾼과 같소. 소하로 말하면 개의 줄을 놓아 방향을 알려 주니, 다른 사람을 능가는 것이오.”(<사기> ‘소상국세가’)

이 말은 주인과 머슴의 관계를 냉혹하게 적시하고 있기에 섬뜩하게 와 닿는다. 결국 소하는 무려 7,000호의 식읍도 받았고, 칼을 차고 궁전에 오르고, 황제를 만날 때도 종종걸음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런데도 소하는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진희(陳稀)라는 자의 모반에 이어 한신의 모반이 일어날 즈음 그는 식읍 5,000호에 무사가 500명이나 되는 지위에 있었고, 잇따른 모반을 평정한 공으로 도위(都尉)라는 호위무사까지 하사 받았다. 소하의 집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다들 축하하는데, 유독 소평(召平)이란 자가 찾아와 “화근은 여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라며 “받은 포상을 반납하고, 여기다 공(公)의 재산까지 덧붙여 왕께 반납하시오. 그리하면 공께 사심이 없음을 알고 기뻐할 것”( ‘소상국세가’) 이라고 충고했다.

소하는 일리가 있다고 여겨 소평의 말에 따랐고, 고조의 신임은 더욱 두터워졌다. 그러나 다시 위기가 닥쳤다. 이듬해 소하는 고조의 사냥터인 상림원(上林苑)의 공터를 남겨두지 말고 백성들에게 농사짓게 하자는 건의를 올렸다가 역린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고조는 주변 사람들의 간언에 따라 소하를 풀어주었다. 그러자 소하는 맨발로 달려가 유방에게 감사를 표하며 화해했다. 소하는 죽음을 맞이하면서 자신의 후임으로 라이벌 조참을 혜제(惠帝)에게 추천하는 아량도 보였다. 청렴결백하여 집에는 담장도 치지 않았다.

소하는 다른 2인자들 아니 2인자를 자처하는 사람들과 그릇이 달랐다. 사람과 일을 보는 안목이 남달랐고, 직언에 귀 기울일 줄 알았다. 때로는 권력자의 역린을 건드릴 정도의 직언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때로는 권력자의 견제 심리를 간파해 낮은 자세로 엎드려 자신의 모습을 가렸다. 죽는 날까지 2인자로 남았고, 그 후광은 후대까지 이어졌다.

남다른 안목과 소신, 청렴과 처신의 권력 2인자 소하가 새삼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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