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친 ‘소스코드(컴퓨터프로그램 기능을 구현하는 문자)’로 병원 내 의료정보시스템을 만들어 팔아 10억원 대 부당이득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다른 회사에서 만든 ‘통합의료정보시스템(전자의무기록·처방전전달시스템 결합 프로그램)’의 소스코드를 몰래 빼낸 뒤 유사프로그램을 만들어 유통한 의료용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대표 이모(40)씨를 부정경쟁방지및영업비밀보호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29일 밝혔다. 범행을 공모한 회사 임원 최모(40)씨와 개발자 송모(36)씨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013년 말 의료용 소프트웨어 전문기업 A사를 차린 이들은, 이듬해인 2014년 5월 경북 의성군의 한 병원에서 더 나은 성능의 통합의료정보시스템을 보유한 B사의 소스코드를 훔쳤다. 의원 등 소규모병원에서만 쓰였던 자사 제품에 비해, B사 제품은 대형병원에서도 쓸 수 있어, 고소득을 올리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작전은 치밀했다. 이씨가 유지보수를 위해 병원을 찾은 B사 관계자에게 “밥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고, 이들이 병원에서 나온 사이 프로그래머 송모(36)씨가 B사 관계자 컴퓨터를 조작해 소스코드를 복사했다. 소스코드를 손에 넣은 이들은 B사의 프로그램과 유사한 새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국 100여 곳의 병원에 유통, 판매금액과 프로그램 유지보수 비용으로 약 10억원 부당이득을 챙겼다.
범행은 소스코드에 걸려있던 ‘유효기한’ 때문에 꼬리를 밟혔다. B사에서 3년으로 설정해놓은 소스코드 유효기한이 끝나자, 거래하던 병원들은 “프로그램이 먹통 됐다”며 업데이트를 요청했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결국 이씨 등 A사 관계자들의 범행이 들통났다. 경찰 조사결과 B사는 이 일이 있기 전까지 까지 피해사실조차 몰랐던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이 처음엔 범행을 부인했지만, 디지털포렌식과 소스코드 상동성 검사 등을 통한 과학적 증거 제시를 제시하자 범행을 시인했다”며 “피의자들이 만든 모작(模作) 프로그램이 설치된 병원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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