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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역사 칸영화제 '젊음'을 택하다

입력
2017.05.2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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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0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더 스퀘어’의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이 상패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EPA=연합뉴스
2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0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더 스퀘어’의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이 상패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EPA=연합뉴스

70년 역사의 칸국제영화제가 ‘노장 예우’라는 전통을 버리고 신진 감독과 여성 감독의 손을 들어주며 새로운 면모를 과시했다.

2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극장에서 열린 칸영화제 폐막식에서는 나이 든 단골 초대 소님을 우대하는 옛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은 경쟁부문에 첫 진출한 감독에게 돌아가고, 감독상과 각본상은 여성 감독들에게 건네지며 여성 차별 논란을 불식시켰다. ‘옥자’의 봉준호 감독과 ‘그후’의 홍상수 감독은 수상하지 못해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더 스퀘어’ 외스틀룬드 감독

첫 초대에 황금종려상 거머쥐어

여성 감독에 감독상 각본상 주며

해묵은 성차별 논란도 털어내

한국영화 수상 불발 아쉬움 속

‘불한당’ ‘악녀’ 등 주목 성과

올해 칸영화제는 그간의 논란을 종식시킨 영화제로 기억 될 만하다. 평단과 여론의 호평을 받은 영화 대신 칸을 자주 찾은 나이 많은 거장에게 상을 안겨 주거나 세평을 무시하고 예상 밖 영화에 상을 주던 관례 아닌 관례가 적용되지 않았다. 칸의 사랑을 받아 온 자비에 돌란 감독(‘단지 세상의 끝’)이 감독상을 받아 야유를 받았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올해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더 스퀘어’의 루벤 외스틀룬드(43) 감독은 경쟁부문에 처음 진출한 ‘새내기’ 감독이다. 설치미술을 하는 미술관 관장이 주인공인 ‘더 스퀘어’는 예술가의 삶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평단의 높은 점수를 얻었다. ‘더 스퀘어’는 지난 4월 칸영화제 집행위원회가 경쟁부문 영화를 발표했을 때만 해도 명단에 없던 영화다. 뒤늦게 추가돼 19편의 경쟁부문 영화 목록에 이름을 올렸고 황금종려상까지 받는 파란을 일으켰다. 2004년 ‘몽골로이드 기타’로 데뷔한 외스틀룬드 감독은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으로 2014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받으며 칸의 눈길을 잡았다.

심사위원대상도 평단과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아 일찌감치 수상이 점쳐진 로뱅 캉피요 감독의 ‘120 비츠 퍼 미닛’이 받았다. 1980년대 국제 에이즈 퇴치 운동 단체인 액트업(ACT UP)의 활동을 담은 영화로 전날 국제비평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상까지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화 ‘유 워 네버 리얼리 히어’를 연출한 린 램지(왼쪽) 감독과 이 영화로 최우수남자배우상을 수상한 호아킨 피닉스가 나란히 서서 카메라 플래시를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영화 ‘유 워 네버 리얼리 히어’를 연출한 린 램지(왼쪽) 감독과 이 영화로 최우수남자배우상을 수상한 호아킨 피닉스가 나란히 서서 카메라 플래시를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여성 감독들에 대한 배려도 눈에 띄었다. 지난해엔 황금종려상이 예상됐던 독일 영화 ‘토니 에드만’(감독 마렌 아데)이 수상하지 못하며 해묵은 성차별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최근 수년 동안 성차별 논란은 칸영화제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경쟁부문에 진출한 3명의 여성감독 중 린 램지 감독(‘유 워 네버 리얼리 히어’)과 소피아 코폴라 감독(‘더 비가일드’)에게 각각 각본상과 감독상을 수여했다. ‘유 워 네버 리얼리 히어’는 최우수남자배우상(호아킨 피닉스)까지 차지했다.

칸영화제 최초로 세 번째 황금종려상을 기대했던 미하엘 하네케 감독(‘해피 엔드’)은 빈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70주년 기념상을 칸의 단골 하네케 감독이 아닌 여자 배우 니콜 키드먼에게 준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예년에 비해 크게 뛰어난 작품은 없었지만 젊은 감독의 영화나 여성의 시선이 담긴 여성 감독 작품에 눈을 돌린 게 괄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극장 레드카펫 행사에서 봉준호(왼쪽에서 여섯 번째) 감독의 ‘옥자’ 출연진들이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9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극장 레드카펫 행사에서 봉준호(왼쪽에서 여섯 번째) 감독의 ‘옥자’ 출연진들이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다. EPA=연합뉴스

한국감독 위상 상승… 넷플릭스 논란은 숙제로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홍상수 감독의 ‘그후’는 나란히 경쟁부문에 올라 수상이 기대됐으나 상을 받지 못했다. 한국 감독으로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가장 많이 초대(4차례)됐으나 상과는 인연이 없었던 홍 감독은 올해 수상이 더욱 기대됐다. 이자벨 위페르가 주연한 홍 감독의 ‘클레어의 카메라’까지 특별상영 부문에 초청돼 수상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무르익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봉 감독은 칸영화제 첫 경쟁부문 진출에 의미를 둬야만 했다. 제작비 5,000만달러(약 560억원)를 들여 만든 ‘옥자’는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인 넷플릭스가 투자하고, 한국의 봉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영국 배우 틸다 스윈튼과 미국 배우 제이크 질렌한, 폴 다노, 한국 배우 변희봉, 안서현 등이 협연해 만들어진 새로운 시도가 주목받았다. 2010년 ‘시’(감독 이창동)와 ‘하녀’(감독 임상수)에 이어 7년 만에 한국 감독 영화 2편이 경쟁부문에 진출한 점도 의미가 크다. ‘옥자’와 ‘그후’는 특히 영화제 내내 화제를 뿌리며 평단과 언론의 고른 지지를 받아 내년에도 한국 감독의 활약을 기대케 했다.

보이지 않는 성과는 경쟁부문 외에도 있다. 비경쟁 부문에 해당하는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감독 변성현)과 ‘악녀’(감독 정병길)가 상영돼 충무로 신예 감독들의 존재를 알렸다.

‘옥자’를 두고 벌어진 프랑스 영화계와 넷플릭스의 기싸움은 세계 영화계 전체에 숙제를 남겼다. 프랑스극장협회가 “넷플릭스의 영화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건 법률 위반”이라 주장하고, 경쟁부문 심사위원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극장 개봉하지 않는 영화에 황금종려상이 돌아가는 건 모순”이라고 공개 발언하며 ‘옥자’는 의도치 않게 논란의 도마 위에 올라가야 했다. 칸영화제는 극장업계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내년부터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만 초청”하기로 내부 규정까지 바꿨다. 극장 상영과 온라인 동시 공개라는 넷플릭스의 영업 전략이 촉발한 갈등은 영화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문제까지 되돌아 보게 했다.

칸=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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