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7년간 줄기차게 추진했던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도입이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없던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원격의료 전도사’ 역할을 했던 주무부처 보건복지부는 입장을 180도 바꿨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유망 산업이라는 주장과 의료 영리화 신호탄이란 반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스마트 헬스케어 분야도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28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등에 따르면 복지부는 ‘원격의료는 의사-의료인(간호사 포함) 간의 진료 효율화를 위한 수단으로 한정한다’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을 적극 따르겠다는 입장을 최근 국정기획위에 낸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했던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의미다. 그간 복지부는 혜택을 볼 수 있는 의료 소외계층 등이 120여만 명에 달한다며 원격의료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해 왔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이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어,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부의 (바뀐)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처음 낸 것은 18대 국회 임기 중인 2010년 4월이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와 시민단체 반발에 밀려 18, 19대 국회에서 잇달아 임기 만료로 법안이 자동 폐기됐고, 20대 국회 임기 중인 지난해 6월 세 번째로 발의된 정부 개정안은 현재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그러나 복지부의 입장 변화로 이번 법안 역시 폐기가 유력하다.
도서 벽지와 장애인, 군 부대, 원양선박, 교정시설 등을 대상으로 2014년부터 실시된 원격의료 시범사업 역시 폐지나 축소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는 금지해도 의료 사각지대 해소에는 적극 나설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의 보건ㆍ의료 공약 설계자로 복지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김용익 전 민주연구원장은 “도서 벽지 거주민은 작은 의원이나 보건소에 가서 의사나 간호사를 동반하고 의사-의료인 간 원격의료를 받으면 된다”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도시 보건지소 확충’과 ‘간호사 등 방문건강관리 인력 확충’을 공약에 넣었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와 의사협회는 이런 정책 변화를 환영하고 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그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한국 의료 환경에서 안정성과 효율성을 보장할 수 없는 원격의료를 무리하게 추진했다”면서 “국민이 아닌 통신ㆍ의료기기 회사의 배만 불리려는 시도를 멈춘 것은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원격의료 확대를 전면 중단하는 데서 오는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임상 현장에서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기술과 의료기기가 발전할 수 있는데, 이번 공약으로 무궁무진한 스마트 헬스케어 분야의 발전 여지가 차단된 셈”이라며 “유독 우리나라에만 있는 ‘원격의료는 곧 의료영리화’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건호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역시 “고령화 사회에서 건강 수명 연장을 위해 만성질환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의사와 환자가 더 자주 보고 만나는 것이 최선”이라면서 “바쁜 현대인이 매번 의료기관에 들르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원격의료를 의사와 환자 간의 새로운 소통 채널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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