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와 짜고 허위 신고
축하 비용 영수증 제출 뒤 취소
금감원, 보험사기 140명 적발
아마추어 골퍼 A씨는 최근 15개월 동안 홀인원(파3 홀에서 1타로 홀아웃)만 네 차례 달성했다. 그보다 더 어렵다는 알바트로스(기준타수에서 3타수 적게 홀아웃)도 두 차례나 했다. ‘골프의 신’이라 해도 손색없는 수준. 하지만 그의 신들린 듯한 기록은 홀인원보험 가입과 동시에 이뤄졌고, 영수증을 조작해 보험금으로 총 2,000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보험사에 허위로 홀인원을 했다고 속인 뒤 10억원 상당의 보험금을 가로챈 사기 혐의자 140명을 적발, 경찰과 공조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28일 밝혔다. 사기 혐의자 중에는 보험설계사도 21명이나 포함됐다.
지름 10.8㎝ 홀 컵에 지름 4.3㎝의 골프 공을 단 한번에 넣는 홀인원을 일반 아마추어 골퍼가 달성할 확률은 1만2,000분의 1. 매주 1회 라운딩을 해도 57년이 걸릴 정도로 어렵지만, 보험 사기를 치기는 밥 먹듯 쉬운 일이었다.
실제 보험설계사 B씨는 2012년 12월~2016년 4월 자신이 모집한 보험계약자 14명과 번갈아 가면서 라운딩을 하면서 홀인원을 18차례나 했다며 보험금 6,700만원을 받아 나눠 썼다. B씨 자신도 이 기간 3차례의 홀인원으로 보험금 700만원을 챙겼다.
홀인원보험은 과거 일정금액(300만~500만원)을 지급하다가 손해율이 높아지자 소요 비용을 보전해주는 실손형으로 바뀌었다. 홀인원을 하면 축하 만찬, 축하 라운드, 기념품 구입 등에 쓴 비용을 보상해주는 것. 하지만 보험사가 카드결제 취소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해 영수증만 챙기고 결제를 취소한 뒤 보험금을 챙기는 사기가 급증하고 있다. 최초 한 차례만 보상하는 사기 방지 장벽을 넘기 위해 사기 홀인원으로 보험금을 가로챈 뒤 해지하고 다시 다른 상품에 가입해 같은 수법을 쓰는 경우도 빈번하다. 보험 상품 8개에 가입해 단 한 차례 홀인원 사기로 보험금 3,600만원을 받은 사례도 적발됐다. 보험사들이 중복가입 사실을 알기 어려운 허점을 노린 것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2∼2016년 홀인원 보험금 지급 건수는 3만1,547건에 달한다. 홀인원보험 가입자들이 연 평균 6,300여차례 홀인원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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