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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문단은 문재인의 ‘문학의 정치’를 화두로 삼아야

입력
2017.05.2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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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인 2009년 6월 9일, 한국의 문학작가 189명은 덕수궁 대한문 앞에 모여 비장한 선언문을 읽어내려 갔다. ‘6ㆍ9 작가선언’으로 명명된 그 날의 선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작가들이 모여 말한다. 우리의 이념은 사람이고 우리의 배후는 문학이며 우리의 무기는 문장이다. 우리는 다만 견딜 수 없어서 모였다.....”

무엇이 견딜 수 없었을까. 선언문은 겨우 출범 1년이 지난 시점의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 파탄의 총체적 징조를 읽어내고는 개탄의 심정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지적했다.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정치검찰, 민주화의 역사를 왜곡하고 모독하는 수구언론, 가난한 시민을 토끼몰이로 진압해 여섯 명을 숨지게 한 용산참사, 21세기에 다시 등장한 시대착오적 색깔론, 국토와 자연ㆍ생명을 죽음과 부패의 불도저로 갈아엎는 4대강 토건정치. 작가들이 예감한 것은 이 사회가 순식간에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이는 문학적 보편가치의 파괴이기도 했다.

최근 10년 간 한국사회는 경찰국가였으며, 시계침은 민주화 시대 이전으로 회귀했다. 세월호 사건에서 절정을 이루고 박근혜대통령 탄핵으로 마감된 시대의 불행한 귀결은 예견된 필연이었다. 국민 다수는 “이것이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입에 붙이고 살았다.

이 시기 한국문단은 크게 보아 세 가지 대(對) 사회적 경향을 보였다. ‘6ㆍ9 작가선언’의 예처럼 특히 젊은 작가들은 사회몰락의 증후에 맞서 글과 삶의 분열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가시적이고 압도적인 사회붕괴 상황은 작가들조차 광장의 정치로 내몰았으며, 작품을 통한 정치적 미학은 충분히 창조적으로 실험되기 어려웠다. 반면 한국문단 일부는 어용화의 징조를 보였다. 일부 작가조직의 권위를 이용하여 친(親)정부ㆍ자본적 ‘찬양 시집’의 출간이 유명 문학출판사에서 시도되었고, 전통의 문학잡지에 박근혜 전대통령의 에세이와 찬양비평이 실리는 파문도 있었다. 한편 한국문단은 신경숙 소설 표절 사태와 성 추문 등 대형스캔들에 휩싸여 공공의 적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들을 두고 한국문단이 자존감 높은 지혜를 발휘해 문학적 수준의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문학인으로서’ 내가 요즘 놀라는 것은 막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오히려 세상에 ‘문학적’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선한 인사정책과 탈권위적 조치들, 주체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정책의지, 묵은 적폐와 부정의를 시정하려는 지향은 시대정신에 적절하게 부합하고 있다. 적어도 현시점에서 문대통령의 실천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취임 이후 행보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문대통령은 스스로 ‘시민’이 되어 ‘낮은 자리’로 향하는 정치를 실천하고 있는데, 이 실천이 ‘사랑과 생명의 원리’에 바탕한다면 이를 ‘문학적 실천’의 일종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또 무엇인가.

반면 불의한 권력과 일상인의 평균적 사고에 맞서 첨예한 사유를 발명해왔던 한국문단은, 촛불혁명을 이끈 시민적 성숙도에 육박하고 그 너머를 예감하게 할 만한 창조적 영감을 현재 보유하고 있는지 새시대의 출발과 더불어 자문해 볼 시점은 아닌가. 최근 5ㆍ18 문학상 수상자와 심사위원회를 향한 진보(?) 문단 일각의 상투적 비난논리를 보면서, 존재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해가 결여된 정의ㆍ역사의 명분이란 이념지형과 상관없이 얼마나 투박하고 허약한 것인가를 역으로 새삼스레 확인하는 계기였다.

나는 현역 평론가로서 한국문학은 사랑하지만 현재의 한국문단을 사랑하지는 못하고 있는데, 한국문단은 지금 막 태동하려는 ‘사랑과 생명의 정치’를 화두로 삼아 그 진심과 성의에서 배우는 게 있어야 할 것이다.

함돈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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