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공개적으로 반발했다고 한다. 정규직화와 일자리 확대를 위해 누구보다 힘을 쏟아야 할 재계가 도리어 그런 사회적 요구에 반기를 든 셈이어서 실망스럽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경총은 양극화와 청년실업 등에 대해 정부, 노동계와 함께 책임져야 할 당사자”라며 “성찰이나 반성 없이 잘못된 내용을 가지고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발언을 했다”고 유감을 표시했을까.
발단은 김영배 경총 부회장이 25일 열린 경총포럼에서 “무조건 비정규직은 안 된다는 인식은 현실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 것이다. 김 부회장은 “정부의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추진 정책 발표 이후 민간 기업에서 정규직 전환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며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산업 현장 갈등이 심화할 것이고 이는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새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과도 배치된다”고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을 비판했다.
김 부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전체 산업경쟁력 저하 문제 등을 감안하라는 원칙적 주문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재계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나아가 사회 전체가 고민하는 문제에 얼마나 귀를 닫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저임금과 고용불안으로 심각한 불이익을 겪고 있으며 그에 따른 양극화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재계가 이런 식의 태도라면, 국민 불신만 키울 뿐이다.
당장 고용노동부가 26일 발표한 자료만 보더라도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총액은 정규직의 66.3%에 불과하다. 4대 사회보험도 정규직은 95.7~98.3%의 가입률을 보인 반면 비정규직은 국민연금(56.7%), 건강보험(59.4%), 고용보험(72.1%) 등 턱없이 낮다. 게다가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배가 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렇게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그에 따라 소득불평등이 심각해진 데는 정부 책임도 적지 않지만 재계의 책임 또한 그에 못잖다. 따라서 재계가 정부를 비판하겠다면 먼저 비정규직을 양산한 데 대해 스스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게 순서다. 다행히 새 정부는 비정규직을 축소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고, 상당수 기업이 이에 호응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자는 심사가 아니었다면 경총은 부회장의 발언을 사과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일자리 확대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약속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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