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 ‘오프숄더, 민소매 금지’ 의상 규제
덕성여대, 도봉경찰서와 협력 새벽까지 순찰
열정과 낭만이 넘치는 대학 축제 시즌이 저물어 간다. 교내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 학생들과 일반인도 함께 즐기는 대학 축제는 주최측 대학 학생들의 고민이 커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외부인이 많이 유입되면서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터질 수 있는 각종 사고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준비 단계부터 고민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대의 경우 외부인 남성들의 유입이 많아지면서 더더욱 조심스럽게 축제를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한국일보는 지난주와 이번주 이어진 각종 대학 축제 현장을 방문하며 이 같은 고민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축제기간 대학은 여대생들 구경하는 곳? 경계 커질 수밖에
여대의 가장 큰 고민은 ‘여대 축제는 여자를 구경하는 곳’이라며 여성을 소비재처럼 보는 태도다. 숙명여대 재학생 강민희(22·가명) 씨는 “축제 때 재학생 사진을 몰래 찍어가는 사람도 있다”며 “’여자 구경을 하고 싶으면 숙대 축제에 가라’라는 말이 인터넷에 올라와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지난 4월 서울여대에는 캠퍼스를 침입해 교내 강의실들을 기어 다니는 정체불명의 남성이 발견돼 공포에 떨었고, 숙명여대에서도 타대학 남학생이 재학생을 성추행 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외부인의 범죄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따라서 불특정 다수가 한꺼번에 학교를 방문하는 축제 기간에 경계심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서울여대 재학생 이유정(20·가명) 씨는 “사회적으로 여자들이 범죄 노출되고, 외부인 침입으로 학생들이 고통 받은 일도 있으니 축제 기간 외부인 문제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녀공학도 고민...홍대는 올해 주점에서 합석 금지
이것은 비단 여대의 문제만은 아니다. 남녀공학도 마찬가지로 축제에서 주점을 운영하면서 여성을 성상품화 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 고민한다. 실제로 수년 전까지 선정성 논란이 발생했던 홍익대의 경우 올해 축제에서 세심한 고민이 돋보였다. 지난 18일 열린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홍익대 축제에서는 윤식당, 프로듀스101과 같은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등을 패러디한 주점들이 주로 보였다. 선정적인 옷차림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학생들이나 특정 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각 주점 부스에는 성 인권위원회에서 배포한 ‘축제에서 지켜야 할 5계명’ 포스터가 부착돼있었다.
올해는 지난해까지 진행되던 주점에서의 합석까지 금지됐다. 합석은 주점에서 각자 온 남녀 손님들이 함께 앉는 것을 말하며, 주점을 운영하는 재학생들은 손님에게 합석을 주선하는 역할을 하거나, 남자 손님이 많으면 주점을 운영하는 여학생들이 대신 자리를 채우도록 하기도 했다. 총학생회 측은 주점에서 합석 주선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시 주점을 철거하겠다는 강수를 뒀다. 이수환 홍익대 부총학생회장 겸 성 인권위원회 위원장은 “과거에 축제 논란이 워낙 많았고, 외부인도 많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논란거리를 사전에 차단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여대생 축제의상 규제까지… “본질적인 문제 해결 아니야”비판도
치안 문제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시선에 대한 복합적인 고민 때문에 축제기간 재학생 의상 규제를 단행한 학교도 있다. 숙명여대는 2014년 축제 포스터가 선정적이라는 논란에 휩싸인 후 총학생회와 학생들이 협의를 통해 의상 규제를 만들었다. 재학생 권시연(22•가명)씨는 “올해 축제에도 단순히 ‘과도한 컨셉은 배제하라’가 아니라 구체적인 기준을 정해 정확한 복장 규정이 각 주점에 전달되어있는 상태”라며 “민소매, 크롭티, 오프숄더, 지나치게 짧은 치마나 바지부터 딱 달라붙은 의상을 금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의상 규제가 여성 자신의 표현을 억압하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는 학생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재학생 김정아(25∙가명)씨는 의상 규제 자체가 성차별적인 조치라며 “2014년 축제 공연 도중 가수 박재범이 상의탈의를 하자 관객들은 멋있다고 외쳤다. 그때 ‘남자는 자신의 상반신을 드러내면 멋진 거고, 여자는 아름다운 몸매를 부각하면 왜 선정적으로 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며 “왜 의상 규제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재학생 조혜은(19·가명) 씨는 “짧은 치마나 파인 옷을 입는 것에 대해 자신을 검열해야 하는 상황이 유감스럽다”며 “여자가 입은 옷을 보고 성적인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태도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의상 규제를 인정하는 입장은 대외적인 이미지나 혹시 모를 불상사 등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재학생 김민지(24·가명) 씨는 “논란의 여지가 될만한 부분을 방지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여권 의식이 낮아 아직 여성이 스스로 치안 문제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재학생 이유정(25·가명) 씨는 “개인마다 학교 이미지에 기대하는 바가 달라 의상에 대해서도 의견 불일치가 있는 것”이라며 “대외 이미지를 고려할 때 의상 규제가 어느 정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역경찰서와 협력해 축제 기간 학내 보안 강화하기도
학생들의 자율성은 보장하되 경찰과의 협력 등 다른 방법을 찾은 여대도 있다. 덕성여대의 경우 학생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되, 외부인 규제에 중점을 뒀다.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축제를 진행한 덕성여대는 주점 명칭이나 의상, 합석 규제를 따로 하는 대신 주점 테이블마다 당부 사항과 긴급 연락처가 담긴 포스터를 부착했다. 서지형 덕성여대 부총학생회장은 “축제 방문자 80%는 남자일 만큼 외부인 유입이 많아 걱정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학우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최소한의 규제 혹은 권고 조처를 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덕성여대 총학생회는 올해 처음으로 서울 도봉경찰서와 협력해 학내 보안을 강화했다. 서 씨는 “학생에게 불건전한 의도로 접근하는 사람을 규제하기 위해 경찰과 협력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도봉경찰서는 주점이 열렸던 18~19일 양일간 오후 6시부터 새벽 3~4시경까지 방범순찰대와 경찰관 총 100명 가량을 배치했다. 방범순찰대는 2인 1조로 총 6~7개 조를 구성해 캠퍼스 내 후미진 곳 등 캠퍼스 곳곳을 순찰했고, 경찰관들은 신고가 있을 때마다 인근에서 출동해 문제를 해결했다.
“학생들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었으면”
전문가들은 학생 내부에서 논의가 치열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진웅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여대는 여학생만 모여 있는 공간이다 보니 치안 문제, 성적 대상화 문제를 더욱 고민한다. 아직 가부장제 사회문화가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학생들도 컨셉 주점처럼 자신을 성 상품화하는 면이 있는 반면에 또 이런 문화를 거부하는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라며 “결국 구성원끼리 함께 논의하며 최고의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축제를 준비하면서 주점 컨셉이나 의상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숙명여대 신입생 신은주(19·가명) 씨는 “주점을 폐지하자는 학생들도 있는데 그건 일방적으로 상황을 회피하자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우리 학교 축제인 만큼 함께 고민하면서 교내 학생들이 가장 편안하게 즐길 방법을 찾아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빛나 인턴기자 (숙명여대 경제학부 4)
윤한슬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