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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리 안의 적폐들

입력
2017.05.26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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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회사는 집합건물에 속해 있다. 수십 개 중소사업체가 한 건물을 공유하는 전용 비즈타워이다. 2,000명 넘는 사람들이 매일 이곳에 출근해 따로 또 같이 일을 한다.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오가며 마주치다 보니 몇몇 분들과는 제법 두터운 친분이 쌓였다. 가끔 만나 밥 먹고 차도 마신다. 전혀 다른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 간 교류는 색다른 호기심과 긴장을 불어넣는다. 같은 건물에 입주하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지나쳤을 사람들의 속내를 듣는 일이니,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또 오늘 같을 지루한 밥벌이 현장은 한층 풍성한 리듬감을 얻는다. 기후 관련 데이터를 채집하고 분석하는 기업가나 의료시약 연구개발자, 측량 전문가가 만나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는 건 그 자체로 흔치 않은 풍경이다.

다만 이런 만남에는 함께 살면서 감내하는 크고 작은 애로도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아, 지겨운 엘리베이터. 원흉을 찾자면 집합건물 속성상 최소 법 규정에 딱 맞춰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건설사에 화살을 날려야 하지만, 여기서 파생되는 다른 문제가 선량한 사람들을 노이로제로 이끈다. 무질서다. 특히 점심시간 무렵, 일층 로비의 엘리베이터 앞은 진풍경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을 가득 실은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 무섭게 대기하고 있던 젊은이들이 우르르 올라탄 후 지하로 내려간다. 처음에는 그들이 지하 일층 구내식당에 가는 줄로만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다시 올라온 엘리베이터는 이미 만원이다. 조금 전 일층에서 타고 간 인원에다 지하 식당을 이용한 사람들이 더해진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곧이곧대로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쓴맛을 다시며 계단으로 향하고, 한두 번 이런 피해를 당하다 보면 ‘나 혼자 바보 될 수 없잖아.’ 하는 심정으로 무질서 대열에 동참하기 십상이다.

입주 초기, 한두 차례 이런 일을 겪으며 감정이 상해버린 나는 일찌감치 그 시간대에 엘리베이터 타는 걸 포기했다. 대신 계단을 통해 7층 사무실까지 걸어 오르내렸다. 이렇게 하는 편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화내며 감정싸움 벌이는 것보다 여러 모로 이득이라고 스스로 다독이면서. 나야 간단히 회피하는 쪽을 택했지만 모두에게 맞는 처방은 아니었다. 24층 업체 대표님의 하소연은 우스우면서도 딱했다. “점심식사 후 올라가는 거야, 뱃살도 뺄 겸 쉬엄쉬엄 계단을 걸으면 돼요. 골칫거리는 밥 먹으러 내려갈 때라니까. 11시 30분이 넘으면 우리 층에 올라온 엘리베이터 안에 이미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요. 저 아래층 사람들이 아예 타고 올라와 버리거든요.”

우리 건물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변 곳곳, 사람이 모이는 장소라면 비일비재하게 빗어지는 익숙한 무질서다. 툭하면 불거지는 아파트 층간소음 다툼, 열차가 도착하기 무섭게 오뉴월 아이스크림보다 빨리 무너져 내리는 지하철 대기 줄, 뒤에 누가 오든 말든 툭툭 놓아버리는 공공건물 출입문…. 일상의 무심함과 무배려, 무질서에 맞서 캠페인을 벌이고 더러 용감한 개인이 나서보지만, 소심한 대다수는 입을 다문 채 끙끙 앓는다. 자칫 잘못 나섰다가 무신경하고 목소리 큰 상대의 역공에 휘말려 악몽으로 번질 위험이 큰 탓이다.

세상이 확 바뀐 듯 유쾌한 마음으로 출근하던 오늘 아침. 내 옆으로 내달리는 청년의 백팩에 머리를 세게 맞았다. 조금만 민첩했더라도 청년을 붙잡아 잘못을 일깨우고 사과를 받아 냈으련만, 뜻밖의 봉변에 주춤거리는 사이 갈 길 바쁜 청년은 저 멀리 내빼버렸다. ‘이런, 백팩아! 아줌마 머리통이 너무 아프다고. 좋던 기분 잡친 건 또 어쩌란 말이냐.’ 오늘도 혼자 구시렁거리며 눈을 흘겨댄다. 바야흐로 새 판 짜기 닻이 올라갔는데, 이 고질병을 고칠 처방은 어디에 있을까?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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