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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문재인의 추도사

입력
2017.05.2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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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추도식 “20년 성찰” 인상적

지난 정권 허물 고쳐 가는 건 당연

자신의 허물 잊지 않는 것도 중요

노무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 행사가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렸다.문재인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 행사가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렸다.문재인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강아지똥’ ‘몽실 언니’로 잘 알려진 권정생의 작품 중 ‘밥데기 죽데기’라는 동화가 있다. 산골에 한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원래 늑대였던 할머니는 포수에게 남편과 자식을 잃고 50년간 복수를 다짐하며 사람으로 둔갑까지 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엔 달걀 두 알을 사다 백일치성을 들여 원한풀이를 도와줄 달걀귀신 밥데기, 죽데기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물어물어 원수를 찾아가던 중 할머니는 자신의 삶 역시 숱한 생명을 죽이고 살아온 것임을 깨닫기 시작한다. 게다가 드디어 만난 원수는 판잣집에서 다 죽어 가는 불쌍한 할아버지가 아닌가.

권정생의 동화는 가난과 역경, 보잘것없는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 성찰과 용서, 화해 등의 주제를 담고 있다. 이 동화는 중반부터 한국 현대사의 장면들을 끼워 넣고 마술적인 방법으로 남북통일의 찬란한 결말에까지 이르지만, 읽기에 따라 “우리는 서로서로 잡아먹고 살고 있다”는 늑대 할머니의 저 성찰이 더 빛나 보이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보름 남짓 동안 준비한 원고로 공식 연설을 한 것이 두 번이다. 취임사와 엊그제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 인사말이다. 둘 다 평이 좋았지만 내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추도사였다. 취임사는 앞으로 역점 둘 많은 정책을 나열하고 그것을 실행하겠다는 다짐의 표시였다. 누구에게나 보이고, 그래서 공과를 평가하기 쉬운 과제중심적인 문장들이다.

추도사는 그에 비하면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메시지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슬픔과 그리움으로 엮인 그 인사말 사이 띄엄띄엄 새 대통령의 의지가 드러난 문구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이다. “개혁도, 저 문재인의 신념이기 때문에 또는 옳은 길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눈을 맞추면서 국민이 원하고 국민에게 이익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나가겠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못다한 일은 다음 민주정부가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단단하게 개혁해 나가겠습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입니다.…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하이라이트는 “우리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뿐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정부까지 지난 20년 전체를 성찰하며 성공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한 대목이다. 권정생 동화에 비유하자면 원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도 돌아보겠다는 것이다. 집권 5년의 성패는 구체적 정책 과제보다 대통령이 가슴에 품은 이런 결연한 의지에 달린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마음이 임기 내내 변하지 않는다면 문재인은 아마도 그가 취임사에서 밝힌 과제의 상당 부분을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초심을 이어 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책 과제는 공과가 뚜렷해서 누구라도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다. 지난 정권의 허물도 빤히 보이니 고치는 작업이 난제라고 할 수는 없다. 지금 90%에 육박하는 새 정부에 대한 업무 수행 지지ㆍ기대는 이런 결과물에 대한 환호이다. 그러나 매사에 자신을 성찰하며 거기서 지혜를 얻기는 그보다 훨씬 어렵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는지 감시하고 꼬집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추도사에 담았던 그 반성의 의지는 대통령 자신이 늘 가슴에 담아 두고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롯이 문재인의 의지이자 실천력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사족이지만, 권정생 동화에서 포수는 자기를 찾아온 늑대 할머니에게 “서로가 용서하고 용서 받기 위한 자리니까 너그럽게 생각하고 용서해 주구려”라며 이렇게 말한다. “할 수만 있으면 내 눈알을 하나 빼버리든지 코를 꽉 깨물어 주든지 두 다리를 싹둑 자르든지 하시오”. 그러자 할머니의 입에서 “용서했다”는 말이 나온다. 죄를 죄다 부정하는 자는 용서하기도 쉽지 않은 법이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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