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核)’이란 낱말은 일상어로서는 ‘사물이나 현상의 중심’을 뜻하지만, 과학 및 군사 용어로서는 ‘원자의 중심부를 이루는 입자’나 ‘핵무기’를 뜻한다. 그런데 과학 지식이 대중화되어서 그런지 일상어로서의 ‘핵’보다 과학 및 군사 용어의 뜻을 지닌 ‘핵’을 사용하는 일이 더 많은 듯하다.
‘원자의 중심에 있는 입자’라는 뜻의 ‘핵’과 ‘가족’이 결합한 ‘핵가족’은 ‘부부와 미혼의 자녀만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뜻한다. ‘핵가족’은 핵심 구성 요소만 갖춘 따라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의 가족이라는 뜻을 명료하게 나타낼 수 있기에 개념상 불명료한 ‘소(小)가족’을 대체하게 되었다.
‘핵무기’라는 뜻의 ‘핵’과 ‘주먹’이 결합한 ‘핵주먹’은 ‘가공할 만한 위력의 주먹’을 뜻한다. ‘핵무기’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없다는 점에서 ‘핵’은 가공할 만한 위력을 비유하기에 가장 적절한 말일 듯하다. 그런데 그 비유가 공포를 불러일으켜서인지 ‘핵주먹’은 널리 쓰이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국어사전에 실리지 않았다.
요즘은 ‘재미’를 줄인 ‘잼’에 ‘핵’을 덧붙인 ‘핵잼’이란 새말이 널리 쓰인다. ‘핵잼’에 쓰인 ‘핵’이 ‘핵무기’를 뜻하는 것임은 분명한데도 이 말은 ‘무척 재미가 있음’이란 뜻으로 쓰인다. 더구나 ‘핵잼’에 대응하는 ‘핵노잼(核no잼)’까지 있다. 이를 보면 ‘핵잼’과 비슷한 뜻의 새말인 ‘꿀잼’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핵꿀잼’이란 말도 쓰이는 걸 보면 ‘핵’은 ‘무척’을 강조하는 말로 덧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쓰임은 ‘핵’의 위력을 넘어서는 것이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핵’이 ‘재미’를 꾸밀 만큼 ‘핵’이 일상화된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해야 할까?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