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2~5차 정보수령자 대상
역대 최대 규모 ‘고강도 처벌’
공매도 이용 의혹 기관은 무혐의
새 정부 증권범죄 엄단 공약에
당국, 제재 강도 더 강화한 듯
지난해 한미약품의 8,500억원대 기술수출 계약 해지 사실을 미리 전해 듣고 주식을 처분해 손실을 피한 ‘미공개정보 수령자’ 14명에게 역대 최대 규모인 24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특히 이들은 회사 내부자로부터 정보를 처음 접한 ‘1차 수령자’가 아닌, 한번 건네진 정보를 전달받아 또다시 전파한 2~5차 수령자들이다. 2015년 2차 이상 정보 수령자까지 처벌하게끔 제도가 바뀐 이후 고강도 처벌은 처음인데, 증권범죄 엄단을 공약한 문재인 정부 정책에 금융당국이 적극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24일 정례회의에서 한미약품 미공개정보로 ‘시장질서 교란행위 금지 조항’을 위반한 14명에게 2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14명 가운데는 개인투자자가 9명으로 가장 많고 한미약품 직원 4명, 한미사이언스 직원 1명이 포함됐다.
이날 증선위는 검찰에서 법 위반 사실을 넘겨 받은 27명 중 14명에게만 과징금을 물렸다. 손실 회피 금액(10만~200만원)이 소액인 11명은 엄중경고만 했고, 2명은 무혐의 처리했다. 또 이 정보를 공매도에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기관투자자들은 조사 결과 무혐의 처분됐다.
앞서 한미약품은 지난해 9월29일 독일 제약사와 맺었던 대규모 기술계약 해지 사실을 제때 공시하지 않아 늑장공시 논란을 빚었다. 한미약품은 다음날 증시 개장 29분 후에야 이를 공시해 당시 62만원대이던 주가가 5거래일간 42만원선까지 곤두박질쳤다. 이 과정에서 대다수 투자자는 대거 손실을 봤지만 미공개정보를 미리 활용한 일부 투자자는 수십억원대 손실을 회피할 수 있었다.
금융위 조사 결과 미공개정보는 작년 9월29일 저녁부터 한미약품 직원들 사이에 퍼졌고 이들 중 일부가 이를 외부에 흘렸다. 한미약품 법무팀 직원 A씨(최초 정보유출자ㆍ구속기소)가 사내 메신저로 먼저 한미사이언스 인사팀의 B씨(1차 수령자ㆍ구속기소)에게 정보를 알렸다. B씨는 이후 개인투자자 C씨(2차)에게, C씨는 고교 동창 D씨(3차)에게, D씨는 고교 후배 E씨(4차)에게, E씨는 과거 직장동료 F씨(5차)에게 차례로 미공개정보를 흘렸다. 이번에 과징금을 부과받은 대상이 바로 2차 이상 수령자인 C~F씨다. 가장 많은 손실을 회피한 전업투자자 F씨(5차 수령자)에겐 13억4,52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당국이 2차 이상 정보수령자에게 과징금을 물린 건, 새 제도 시행 이후 두 번째지만 첫 번째(과징금 약 1,000만원)와 비교하면 제재 수위가 대폭 강해졌다. 당국은 2015년 7월부터 시장질서 교란행위 제재를 신설해 2차 이상 수령자는 5억원 이하 과징금을 부과하되 미공개정보로 얻은 이익(손실회피액)의 1.5배 이상이 5억원을 넘으면 그 금액 이하의 과징금을 물리고 있다.
업계는 새 정부에서 내부자거래, 주가조작 등 증권범죄에 대한 당국 제재가 한층 강화될 걸로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가조작은 반드시 처벌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겠다”며 처벌 강화를 공언한데다, ▦증권범죄 형량 및 양형 대폭 강화 ▦대통령 사면권 제한 ▦증권범죄 관련 손해배상소송 소멸시효 확대 ▦증권선물위원회 제재의결서 공개 등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손혁 계명대 회계학과 교수는 “집행유예 비율이 70%나 될 만큼 ‘솜방망이’ 수준인 증권범죄의 형량과 양형을 서둘러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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