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장훈의 욕설 파문이 요 며칠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김씨는 20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모식 무대에 오르자마자 입에 담을 수 없는 욕과 비속어를 쏟아 냈다. “밑에서 XXXX 했습니다” “XX 진짜” “아, XXX들 진짜”… 어린이와 가족 등 1만5,000여 명이 무대 아래를 가득 채운 자리에서였다. 김씨는 무대 근처에 주차하려다가 “통행에 방해가 되니 차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 흥분했다고 한다. “(경찰에) 욕을 한 것에 대해 잘못한 걸 모르겠습니다”라고도 했다.
▦ 자신의 무례한 언행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김씨는 다음날 장문의 사과문을 올려 용서를 구했다. 파문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그가 공무를 수행하는 경찰에 그렇게 격하게 대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김씨는 무대에서 “제복에 대한, 완장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니까, 알레르기가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공권력에 대한 깊은 불신을 토로한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주차금지구역이니 차를 대선 안
된다는 경찰에 욕설을 내뱉고, 많은 관객들이 보는 무대에서까지 화를 삭이지 못해 육두문자를 쓰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 두 달여 전 한국일보는 ‘X발 비용’이라는 기획기사를 보도했다(▶ 관련기사).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쓰지 않았을 비용이라는 뜻의 신조어가 젊은층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사회와 조직에 대한 불만이다. 취업난, 주거난, 과도한 업무, 비인권적 권위주의 문화 등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혼자서는 어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분노다. 그런 분노가 불신으로 이어진다. 사회의 성숙도를 재는 신뢰지수에서 우리나라가 최하위권이라는 것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 김씨의 행동을 보면서 탄핵정국에서 오간 정치권의 저질 막말, 독설을 떠올리게 된다. 입장에 따라 누구는 사이다 발언이라고 하고, 누구는 싸가지 발언이라고 한다. 욕을 시원하게 하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동질감이 강해진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자기만 생각한 것이다. 더욱이 한번 각인된 불신과 분노의 감정은 실제와 관계없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법이다. 말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지만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기도 한다. 신뢰사회로의 변화는 내가 하는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듯하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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