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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두 번째, 제2막이어야 의미가 크다

입력
2017.05.24 15:46
수정
2019.02.1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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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오카 다에코(1935~)는 대학 재학 중에 쓴 시집으로 일본 시단의 아쿠타가와상인 H씨상을 수상했다. 이후 인간관계의 불가사의함을 응시하며 존재의 근원을 쫓는 소설들로 평단의 주목을 받고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이처럼 유명한 작가이지만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은 1979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아득한 하늘’이 유일하다. 이 작품은 전후(1948년 8월 이후)에 발표된 일본 단편소설 가운데 ‘성’을 주제로 했던 열한 편의 작품을 선정해 고단샤에서 출판했던 <슬픈 집착, 성애(性愛)>(소담출판사, 2005)에 실려 있다.

해발 120m의 히구레(日暮) 산을 무대로 한 이 작품은 간노 소요라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산나물을 캐다가 살해된 예순아홉 살 노파는 양 무릎 아래까지 몸뻬가 흘러내린 채 나뭇가지로 덮여 있었다. 피살자가 연로했던 만큼 경찰은 이 사건을 성폭행으로 위장된 범행으로 보고, 가족 주변을 탐문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피살자가 죽던 날 히구레 산에서 내려오는 낯선 사람을 보았다는 목격자가 나타나면서 수사는 실마리를 찾았다. 곧바로 용의자의 몽타주가 작성되고, 스물아홉 살 된 나카가와가 체포됐다. 그는 히구레 산에서 자전거로 한 시간이나 떨어진 마을에 사는 벙어리였는데, 알고 보니 근친혼으로 태어난 그의 남자 형제들 모두가 벙어리였다.

범인이 잡히고 그의 정체가 밝혀지자 피살자와 같은 마을에 살던 쉰다섯 살 난 마쓰야마 도모노 할머니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히구레 산자락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하는 도모노 씨가 나카가와를 처음 본 것은 2년 전 여름이다. 오전 10시경 자전거를 타고 구멍가게에 나타났던 그는 1,000엔짜리 지폐를 꺼내 보인 다음, 성교를 암시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 몸짓에서 벙어리 청년의 간절한 욕구를 읽은 도모노 씨는 ‘단순히, 남자가 불쌍하다는 마음’에서 그를 껴안아 주었다. 금전 거래는 일절 없었다.

벙어리 남자는 봄철과 가을철만 되면 이삼일씩 도모노 씨를 찾아와 섹스를 보챘고, 성교가 끝나기 무섭게 아무 표정 없이 자리를 떠났다. 딱히 벙어리라서가 아니라 그에게는 추상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남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섹스였는지 몰라도, 도모노 씨의 입장에서는 절대 섹스가 아니었다. 도모노 씨가 그에게 성적 욕망을 느낀 적은 없었다. 처음에는 불쌍했지만, 도모노 씨는 점점 그가 두려웠다. 이유는 그가 벙어리라서가 아니라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남자였기 때문이다.

3년째 되던 봄 어김없이 남자가 찾아왔다. 도모노 씨는 그와 절연하고자 거부의 손짓을 했으나 벙어리는 막무가내였다. 도모노 씨는 그를 피해 히구레 산으로 도망쳤고, 도모노 씨를 산 속에서 놓쳐버린 나카가와는 그녀 대신 발견한 간노 소요 씨에게 추근댔다. 그 뒤의 이야기를 우리는 이미 아는 바이며, 도모노 씨는 계절의 순환처럼 영원할 것 같았던 불쾌감으로부터 해방됐다. 소설이 여기서 끝났다면, 산골 마을마다 하나씩 전해져 내려오는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대’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놀랍게도 소설은 그 해 가을에 나카가와를 꼭 빼어 닮은 또 다른 벙어리가 도모노 씨를 찾아오는 것으로 다시 시작된다. 두 번째 벙어리가 등장하는 순간 독자는 이 작품의 의미를 퍼뜩 깨닫게 된다. 남성은 성을 놓고 여성과 대화할 수 있는 언어를 아예 갖고 있지 않거나, 그럴 필요를 못 느낀다는 것. 요약하느라 누락된 세부는 모두 이 주제에 집중되어 있다.

매우 우연히도 나는 이 작품을 어느 자리에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강의하기 하루 전날 읽었다. 2막으로 이루어진 <고도를 기다리며>의 제1막은 ‘고도를 기다린다, 오지 않는다’로 되어 있으며, 제2막은 ‘그래도 고도를 기다린다, 오지 않는다’로 되어 있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반복이다. 두 번째 벙어리와 제2막이 없었다면 두 작품은 아무 것도 아니다. 첫 번째 벙어리와 제1막은 두 번째 벙어리와 제2막에 의해서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박정희보다 박근혜가 더 중요했던 이유도, 노무현보다 문재인이 더 주목 받는 이유도 여기 있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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