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와 도덕에 기댔던 효 사상이 흐려지면서 부양의 의무가 강제적인 사회 규범이나 법률의 형태로 변모하고 있어 주목된다.
실제로 이미 유교문화권에서는 자녀의 도리인 효와 부양을 법으로 강제하는 움직임이 제도화하고 있다. 중국과 싱가포르가 대표적이다. 싱가포르는 1994년 ‘부모부양법’을 제정해 늙고 가난한 부모를 부양하기 거부하는 자녀에겐 벌금형이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은 또 자녀들이 부모에게 매월 생활비를 의무적으로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중국도 2013년부터 60세 이상 부모에게 의무적으로 정신적ㆍ금전적 지원을 하도록 규정한 ‘노인권익보장법’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노부모와 따로 사는 자녀는 자주 부모를 방문해 안부를 묻도록 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부모가 재산을 증여한 후 자녀가 불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효도계약서’를 작성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인터넷에서 효도계약서 양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지난 19대 국회에서는 자식이 계약을 위반했을 때 보다 쉽게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불효자방지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2015년 말 부모를 충실히 부양한다는 각서를 쓰고 부동산을 물려받은 아들이 이후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은 계약 위반이라며 부모에게 재산을 돌려주라는 대법원 판결도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자식과 부모 간 부양ㆍ피부양 관계의 약화로 인해 발생한 가족 기능의 공백을 법적 강제로 메우려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궁여지책을 넘어 자녀들에게 전가됐던 부모 부양의 책임을 무엇으로 대체할지 사회적 합의부터 도출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김유경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녀가 부양의 주체로서 가치가 있었던 건 농경사회에서나 있었던 일”이라며 “낮은 출산율과 핵가족화로 자녀들이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의식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가 ‘돌봄’의 주체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계속 커지고 있다. 통계청의 ‘2016 사회조사’에 따르면 부모 부양에 대해 ‘가족과 정부ㆍ사회’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이 45.5%로 가장 많았다. 반면 부모의 노후를 ‘가족’이 돌봐야 한다는 생각은 2008년 40.7%에서 2016년 30.8%로 감소했다. 부모 부양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은 2008년 11.9%에서 2016년 18.6%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아직 역사가 짧고 부족한 각종 연금 제도와 사회 서비스를 늘리면서 ‘공적 노후보장체계’를 확충하는 데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민의당이 지난 2월 대선 공약으로 발표한 ‘효도5법’도 유사한 취지의 법안들을 담고 있다. ▦저소득층 기초연금 확대 ▦75세 이상 장수수당 지급 ▦간병비 전용 카드 도입 ▦노인장기요양제도 대상자 확대 등이 그 예다.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겸임연구위원은 “공적 연금 제도와 공공부조가 성숙할수록 부모가 스스로 노후에 기여하는 몫도 늘어나고 자녀들도 부양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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