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햇볕정책의 기조를 이어받고 있다. 제재ㆍ압박 일변도였던 전임 박근혜ㆍ이명박 정부의 대북 접근과는 여러 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대북 제재 완화, 인도적 분야의 교류와 대화 재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엄중한 상황이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ㆍ압박 조치를 초래한 북한의 핵ㆍ미사일 개발 집착은 여전하다. 북한은 문 대통령 취임 열흘 만에 벌써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을 두 차례나 강행했다. 남한의 정권 교체와는 상관 없이 제 갈길 가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 이런 와중에 이제 막 틀을 갖추기 시작한 외교안보라인의 핵심 인사들이 대북제재 완화나 남북 교류 재개 및 대화 재개로 비칠 수 있는 성급한 발언들을 쏟아내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이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22일 신임인사 차 국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판문점 핫라인 복구 필요성 등을 언급했고,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5ㆍ24조치 해제와 금강산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를 거론했다. 민간단체 중심으로는 2008년 이후 중단됐던 6ㆍ15남북공동 행사가 추진되고 있다. 통일부는 민간교류를 유연하게 검토하겠다고 했다. 물론 “유엔안보리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ㆍ압박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라는 단서를 달고 하는 얘기들이다. 하지만 새 정부의 성급한 제스처가 국제사회에 의심을 불러 일으키고 북한에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때처럼 북한이 먼저 달라지면 돕겠다는 식의 접근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었음은 분명하게 드러난 바 있다. 두 정부는 그런 발상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그 사이 북 핵ㆍ미사일 문제는 훨씬 악화했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는 틀을 만드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도 어느 정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대북교류와 대화 재개를 언급했을 듯하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의 핵ㆍ미사일 집착 의지와 호전성을 과소평가하고 성급하게 접근했다가 핵ㆍ미사일 도발이 계속 되면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 더구나 청와대와 내각의 외교안보 진용이 완전히 꾸려지지도 않았고, 새로운 대북 접근에 대한 우리사회 내부의 지지 확보도 충분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완전한 진용을 갖춘 뒤 시간을 갖고 충분한 검토를 거쳐 접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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