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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포커스] “비정규직 또는 무직”… 웃기면서 우는 개그맨들

입력
2017.05.2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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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공채 1기 개그맨인 이용식이 최근 서울 목동 SBS 사옥 앞에서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 종방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했다. 이용식은 한국일보에 "개그를 포기하면 인생을 포기하는 일이라고 후배들에 꿈을 잃지 말라고 했는데 이제 해 줄 말이 없다"며 속상해했다. 이용식 제공
MBC 공채 1기 개그맨인 이용식이 최근 서울 목동 SBS 사옥 앞에서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 종방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했다. 이용식은 한국일보에 "개그를 포기하면 인생을 포기하는 일이라고 후배들에 꿈을 잃지 말라고 했는데 이제 해 줄 말이 없다"며 속상해했다. 이용식 제공

1인 피켓 시위, 아이디어 제안… 전유성 이용식이 나선 이유

1999년 KBS2 ‘개그콘서트’ 산파 역할을 하며 공개 코미디 시대를 연 개그맨 전유성은 지난 20일 SBS 예능국 고위 관계자에 전화를 걸었다. ’웃찾사’ 폐지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다. 오는 31일 프로그램이 종방하면 SBS 개그맨들은 당장 일터를 잃게 된다. 전유성은 새 무대를 만들어 주는 일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경북 청도군에서 개그극장을 운영 중인 전유성은 “이번 주에 새 개그 프로그램 기획안을 들고 SBS에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KBS2 ‘개그콘서트’와는 다른 새로운 콘셉트의 개그프로그램 아이디어를 내 SBS에서 개그 무대의 명맥을 이을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희망이다.

‘뽀식이’ 이용식은 지난 19일 서울 목동 SBS에 가 ‘웃기던 개그맨들이 울고 있네요’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웃찾사’ 폐지에 항의하는 1인 시위까지 했다. 2014년 10월 이후 MBC에서 개그프로그램이 사라진 뒤 SBS마저 폐지하면 개그맨들이 설 자리가 더욱 좁아져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 용기를 냈다. 엄용수 코미디언협회장도 22일 SBS를 찾아 ‘웃찾사’ 종방에 대한 방송사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오는 31일 종방을 앞둔 SBS '웃찾사'. 갑작스런 프로그램 폐지로 150여 명의 개그맨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SBS 제공
오는 31일 종방을 앞둔 SBS '웃찾사'. 갑작스런 프로그램 폐지로 150여 명의 개그맨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SBS 제공

지난해 공채로 뽑아 놓고… 무책임한 방송사

‘웃찾사’는 2~3%대의 낮은 시청률에 머물고 있다. 시청자가 외면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방송사의 종방 결정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원로 개그맨들까지 나서 ‘웃찾사’ 종방에 우려를 표한 이유는 따로 있다. 공개채용으로 개그맨을 뽑아놓고 대책 없이 프로그램을 없애 개그맨이 생계를 위협받도록 한 방송사의 무책임한 처사 때문이다. SBS는 지난해 공채 16기 신인 개그맨을 뽑았고, 이들과 2년 전속 계약을 맺었다.

SBS 여러 개그맨에 따르면 전속 계약을 할 때 계약금은 있지만, 따로 지급되는 월급은 없다. 결국 ‘웃찾사’에 나와 출연료를 받아야 하는데, 프로그램이 종방돼 졸지에 밥벌이까지 막막해졌다. 전속계약에 묶여 다른 방송사에 갈 수도 없다. ‘웃찾사’에 출연했던 개그맨 A는 ”무대에 설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힘든 상황도 감내해 왔는데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다”며 “‘웃찾사’ 출연료로 생계를 꾸려온 개그맨들은 당장 눈앞이 깜깜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웃찾사’ 출연 개그맨들은 프로그램 종방 소식을 마지막 녹화(25일) 2주 전인 11일에서야 들었다. ‘웃찾사’ 제작진은 프로그램 폐지가 아닌 시즌제로 개편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개그맨들에 다음 시즌을 대비해 코너를 준비하라는 통보는 없었다. 다음 시즌이 언제 시작될 거란 기약도 받지 못했고, 대책 마련에 대한 논의 자리도 없었다.

이용식은 “‘웃찾사’ 종방으로 비정규직이던 개그맨은 졸지에 무직이 된 것”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시청률 문제로 ‘웃찾사’를 없앤다 하더라도 방송사에서 공채로 개그맨을 뽑은 만큼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며 “개그맨들과 대안에 대해 협의했더라면 이렇게 울분을 토하는 이들이 없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경환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SBS가 ‘웃찾사’를 폐지하면 전속 계약에 묶여 있는 개그맨들에게 계약 유지 여부에 대한 선택권을 줘야 한다”며 “계약 유지를 원하는 이들에겐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비용 지급 등 지원 대책을 내놓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KBS 공채 개그맨의 처우도 SBS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개그 장르만 홀대… “다양한 세대 즐길 수 있어야”

방송사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그프로그램 육성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음악과 드라마는 세대별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한 반면, 유독 개그프로그램 제작에 방송사들이 인색해서다. SBS ‘인기가요’ 등은 ‘웃찾사’ 보다 더 낮은 시청률인 1%대를 전전하고 있지만, 지상파 방송 3사는 음악 순위 프로그램을 폐지하지 않는다. 신인 가수의 등용문 역할을 한다는 점을 높이 사 시청률이 안 나와도 음악프로그램 제작을 이어간다. 개그프로그램만 시청률을 잣대로 폐지하는 건 장르에 대한 홀대라는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지상파 출신으로 극단을 운영 중인 한 개그맨은 “지상파에서 개그프로그램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다양한 시청 층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며 “그간 방송사들이 중년층을 잡는 데 실패해 개그 프로그램 경쟁력이 약화한 만큼 ‘가요무대’처럼 중년 개그맨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으로 개그 토양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KBS2 ‘개그콘서트’는 최근 저조한 시청률을 이어가고 있다. KBS 제공
KBS2 ‘개그콘서트’는 최근 저조한 시청률을 이어가고 있다. KBS 제공

재갈 물린 정치 코미디, 콩트만 반복… 한국 개그의 퇴화

‘웃찾사’ 뿐 아니라 한 때 30%에 육박하던 ‘개그콘서트’는 올해 평균 시청률이 8.9%(1월1일~5월21일·닐슨코리아 집계)로 떨어졌다. 개그프로그램의 ‘시청률 보릿고개’가 따로 없다. 수 년 간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정치 풍자에 몸을 사린 데다, 콩트 코미디만 반복하며 콘텐츠의 변화를 주저한 탓이 크다.

자사 출신 개그맨 위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폐쇄적인 문화도 높은 장애물이다. 6,000여 명의 개그맨이 소속된 일본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 요시모토흥업의 최신화 한국사무소 대표는 “한국 개그의 위기는 프로그램 제작의 폐쇄성과 콩트 일변도의 획일성, 공연인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개그맨들에 대한 낮은 처우 등 복합적인 원인에서 비롯됐다”며 “이런 환경이 변하지 않는 한 개그프로그램과 개그맨의 위기는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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