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2세’들이 U-20 월드컵 무대를 활발히 누비고 있다.
미국 U-20 축구대표팀 골키퍼 조너선 클린스만(20ㆍUC버클리)은 ‘독일 축구의 전설’ 위르겐 클린스만(53)의 아들이다. 또한 프랑스 U-20 축구대표팀 공격수 마르퀴스 튀랑(20ㆍFC소쇼)의 아버지는 ‘무결점의 짐승’이라 불리며 ‘뢰블레 군단(프랑스 대표팀 별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간판 수비수 릴리앙 튀랑(45)이다.
클린스만은 독일의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96년 유럽축구선수권 우승 주역이다. 한국과 인연도 각별하다.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축구 동메달을 땄고 1994년 미국월드컵 때는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해 한국에 2-3 쓰라린 패배를 안겼다. 릴리앙 튀랑 역시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해 맞대결한 경험이 있다. 당시 한국과 독일은 1-1로 비겼다. 세계적인 공격수였던 위르겐의 아들은 골문을 지키고 철벽 수비수였던 릴리앙의 아들은 스트라이커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위르겐은 독일 출신이지만 아들 조너선은 미국 캘리포니아 뉴포트비치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이다. 원래 아버지처럼 공격수였지만 열한 살에 골키퍼로 변신했다. 193cm의 장신 골키퍼인 그는 북중미 예선 6경기를 4실점으로 막아 최우수 골키퍼로 뽑혔다. 아직 대학생인 조너선은 아버지가 처음 프로생활을 시작했던 독일 분데스리가 슈투트가르트에 입단할 거란 소문이 돌고 있다.
조너선은 22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에콰도르와 F조 1차전에 선발 출전했다. 아들 경기를 보러 인천을 찾은 위르겐은 ‘반가운 얼굴’과 조우했다. 차범근(64) 대회 조직위원회 부위원장과 아들 차두리(36)를 만났다. 나이는 차 부위원장이 열한 살 위지만 둘은 1980년대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 함께 공격수로 활약한 인연이 있다. 같은 축구부자(父子)라 위르겐의 마음을 잘 아는 차 부위원장은 “조너선의 성공을 바란다”고 덕담했다.
하지만 조너선은 이날 3실점하며 고개를 숙였다. 특히 후반 19분 수비수의 백 패스를 잡았는데 에콰도르 공격수 둘이 압박하자 제치려다가 가로채기 당해 브라이언 카베자스(20ㆍ아탈란타)에게 골을 헌납했다. 0-2로 뒤지던 미국이 힘겹게 2-2 동점을 만든 지 10분 만이었다. 조너선은 그 전인 후반 14분 일대일 위기에서 눈부신 선방으로 위기를 넘기기도 했지만 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어이 없는 실수로 빛이 바랬다.
다행히 미국은 후반 추가시간 루카 델 라 토레(19ㆍ풀럼)의 극적인 동점골로 기사회생하며 3-3으로 비겼다. 조너선은 종료 휘슬이 울리자 토레에게 달려가 포옹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프랑스 마르퀴스 튀랑도 이날 온두라스와 E조 1차전에 선발 출전했다. 아버지로부터 ‘양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그는 190cm의 건장한 체격을 자랑한다. 마르퀴스는 열여덟 살이던 2014~15시즌 프로에 데뷔해 프랑스 U-17, U-18, U-19 등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온두라스를 상대로 득점은 올리지 못했지만 후반 28분 교체될 때까지 활발하게 움직이며 팀의 3-0 완승에 힘을 보탰다. 유럽예선 1위 프랑스는 첫 경기부터 막강한 공격력을 뽐내며 우승후보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현장에서 경기를 본 김정수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는 “마르퀴스는 힘과 스피드가 뛰어났다. 훌륭한 신체 조건을 활용한 위력적인 돌파를 많이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만약 미국이 조 1위, 프랑스가 조 2위를 하면 16강에서 만나게 돼 있어 ‘레전드 2세’ 맞대결이 펼쳐질수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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