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은 보통 불이 아래서 위로
산불은 타다 남은 나무가 단서
더 많이 탄 면이 발화점 향해
화마가 휩쓴 자리에는 잿더미가 남는다. 그 안에서 죽음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이 과학수사다. 강원경찰청 광역과학수사팀(속초권)은 매년 100여건의 화재 현장에 출동해 혹시 모를 흔적을 찾고 있다. 그 중 방화로 밝혀지는 것은 5~10건. 홍종현 팀장은 “화재 현장은 이미 불에 다 타버려 증거를 찾기도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화재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 복원이다. 화재 진압을 위해 소방용수를 뿌리고 도끼로 물건들을 끄집어 내다 보면 현장은 아수라장이 될 수 밖에 없다. 물건이 남아있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대형 화재의 경우, 굴삭기를 동원해 건물을 부수거나 파묻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예 전소되면 감식의 난도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따라서 요원들은 초기 현장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안전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독한 연기 속으로 뛰어들기 일쑤. 지난해 안전헬멧이 과학수사대원들에게 배포됐지만 여전히 화재 현장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찰이니까 들어가죠, 누가 대신해 줄 수 없잖아요”라고 홍 팀장은 말했다.
화재가 시작된 발화점을 찾는 것은 기본 중 기본. 주택 화재는 불이 아래에서 상층부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지만 불이 번져가는 속도와 진행해가는 패턴을 확인하면서 불이 타 들어간 방향을 쫓아나간다. 산불은 타다 남은 나무의 불이 더 많이 탄 면이 발화점을 향한다. 발화점이 일반적으로 가장 많은 재를 남기는 법이지만, 기름 성분으로 방화한 사건은 워낙 순식간에 불길이 치솟아 발화점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정확한 현장 확인을 위해 현장에 가득 찬 물을 퍼내고 재를 긁어내는 것도 과학수사요원들의 몫이다.
화재 사고로 발견된 시신은 불에 타 오그라들면서 권투선수 같은 ‘투사형 자세’를 취한다. 시신을 감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재 당시 생존 여부를 가려 줄 ‘활력징후(vital sign)’를 찾는 것. 가령 기도에 검게 붙은 그을음이 없다면 누군가 살인을 저지른 후 사인을 은폐하려 방화했을 가능성이 크고, 반대라면 화재 당시 피해자들이 생존했음을 뜻한다. 시신의 발에 묻은 재는 이동 여부를 알려주고, 물결무늬의 화상 흔적인 ‘물결흔’은 누군가 직접 시신에 기름을 뿌려 방화했음을 알려준다.
기자가 찾은 광역과학수사팀 사무실에는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문구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최형준 경사는 양양 일가족 방화사건이 발생했던 3년 전을 떠올리며 “당시 네 가족이 억울하게 죽은 것에 화가 나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했다. 최 경사는 “죽은 사람이 범인을 알려주려고 그랬나 싶을 정도로 온갖 증거물들이 현관 주위에 모여 있었다”며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양양=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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