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힘 모아”
해외서 수주받은 선박 건조에 분주
조선업 살리겠다는 文 정부에 희망
“다들 열심히 일했는데 대우조선해양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허탈하지만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모두들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수주가 지난해보다 늘고 있듯 국내 조선업도 바닥을 찍고 다시 올라갈 것입니다.”
지난 20일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만난 김영보 영진기업 대표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회사 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조선산업을 반드시 살리겠다고 해서 모두들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거제의 지역 경제는 악화일로에 있다. 거제시 관계자에 따르면 아파트 가격은 고점 대비 15~20% 떨어졌고, 소상공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가량 줄었다. 이날 저녁 만난 고현동의 한 식당 주인은 “지역 경제가 악화하면서 주위에 장사가 안 돼 가게 문을 닫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조중훈씨도 “밤 10시가 지나면 시내에 택시를 잡는 손님을 만나기 어렵다”며 “수입이 30% 이상 줄었다”고 푸념했다.
그러나 조선업황이 바닥을 찍고 회복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감은 거제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이튿날 방문한 옥포조선소는 한 여름 같은 더위에도 덴마크, 러시아, 중국 등에서 수주 받은 40여척의 선박을 건조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대우조선 선박조립부에서 일하는 정명식씨는 “월급이 절반 가까이 줄어 생활이 어렵지만 내년부터 수주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로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옥주원 거제시청 조선해양플랜트과장은 “새 정부에 거는 시민들의 기대가 매우 크다”며 “정부가 중소형 조선사에 대한 금융권의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 요건을 완화하고 국내 선사의 선박이나 공공 선박을 우리 조선사들이 수주하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선 빅3(현대중공업ㆍ대우조선ㆍ삼성중공업) 직원 수는 2015년 5만4,582명에서 지난해 4만 6,235명으로 8,347명 줄었다.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한때 5만명이 넘던 대우조선 인력은 3만 7,000여명으로 급감했다. 180개 이상이던 대우조선의 협력사도 130여개만 남았다. 거제에서 만난 조선업 관계자들은 대형 조선사들의 무리한 확장으로 생긴 부실을 걷어내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성일 대우조선 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은 “인원감축에만 초점을 맞춰 일정 인원을 줄이라고 강요하다 보니 기술력을 갖춘 고숙련 인력들이 먼저 빠져나가는데 이런 일이 계속되면 국내 조선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원경희 거제상공회의소 회장은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중소기업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중소기업들이 버틸 수 있도록 정부의 금융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당분간 조선업계의 혹독한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체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현장의 의견도 엇갈렸다. 김영보 대표는 “대우조선을 매각해 빅2 체제로 가는 것보다는 대형 조선 3사가 모두 부실 부문을 정리하고 축소해 각 사의 강점을 키우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임성일 정책실장은 “특정 분야는 대우조선의 기술력이나 인적 자원이 월등해 충분히 독자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효율성만 강조하며 인수합병(M&A)을 이야기하는 건 우리나라의 조선산업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중공업의 부장급 직원 김정수씨는 “두 회사가 생산능력을 30% 가량 축소하고 상선 위주로 합병해 빅2 체제로 가야 한다고 보지만 삼성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할 여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조선산업을 살리기 위해 현장 속에서 쏟아지는 각종 제언들을 종합해보면 당장은 철저한 구조조정만이 정답이다. 조대승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조선 3사가 무리하게 확장한 부문을 정리해 규모를 줄이는 것이 우선”이라며 “2사 체제든 3사 체제든 저가수주 같은 과당경쟁을 지양하고 협력과 경쟁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거제=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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