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봉투 만찬’ 수습이 첫 과제
초상집 된 조직 분위기 잘 추스려야
尹, 최순실게이트 재수사 예고
‘尹ㆍ靑 거리두기’ 바로미터 될 듯
‘돌아온 칼잡이’ 윤석열(57) 검사가 22일 전국 최대 규모의 검찰청이자 최고의 수사력이 집중돼 있는 서울중앙지검의 새 사령탑으로 공식 취임한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로 박근혜 정권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바람에 지방 한직으로 연거푸 좌천됐던 그가 문재인 정부 들어 이른바 ‘검찰의 꽃’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셈이다. 새 정부가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검찰 개혁의 상징적 인물로 떠오른 형국이라, ‘윤석열호(號)’의 행보에 법조계의 눈과 귀가 집중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권토중래’지만 윤 지검장이 짊어져야 할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당장 ‘돈 봉투 만찬’ 사건으로 엉망진창이 된 조직 분위기를 추스려 빠른 시일 내에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 이 사건으로 전임인 이영렬(59) 전 지검장은 부산고검 차장으로 강등 조치됐고, 만찬 자리에 참석한 다른 서울중앙지검 간부 6명도 감찰선상에 올라 있다. 한 검찰 간부는 “이 전 지검장은 매우 합리적인 성격으로 후배들의 평가도 상당히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힘들었던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잘 지휘하고도 불명예 퇴진하는 셈이어서, 서울중앙지검은 한마디로 초상집 분위기”라고 전했다. 윤 지검장에 대한 일선 검사들의 신망이 매우 두텁긴 해도, 소속 검사와 직원들이 드러내 놓고 ‘환영’하기엔 현 상황이 너무나도 얄궂다는 말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 듯, 윤 지검장도 별도의 취임식 없이 소속 직원들과의 간단한 상견례만 하기로 했다.
특히 서울중앙지검 지휘부인 1ㆍ2ㆍ3차장검사와의 관계 정립은 쉽지 않은 문제다. 노승권(52) 1차장검사는 사법연수원 21기로, 윤 지검장(23기)보다 두 기수가 높다. 이정회(51ㆍ23기) 2차장검사와 이동열(51ㆍ22기) 3차장검사도 동기이거나 한 기수 선배다. 사석에서는 이들이 ‘늦깎이’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나이가 한참 많은 윤 지검장에게 ‘형님’ ‘선배’ 등의 호칭으로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상명하복 문화가 뚜렷한 검찰 조직에서 공식 업무 처리는 철저히 기수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윤 지검장도 과거 노 차장검사 등과 한 부서에서 근무했을 때 ‘검찰 선배’로 깍듯이 예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분간은 ‘어색한 동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원활한 조직 운영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역시 검찰 본연의 업무, 즉 ‘수사’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그의 발탁 배경에 대해 “검찰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수사 그리고 공소유지”라면서 “윤 검사가 확실하게 해 낼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직접 밝혔다. 지난달 17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우병우(50)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의 기소와 함께 국정농단 사건 수사는 일단락됐다는 게 세간의 인식인데도, ‘수사’라는 단어를 포함시킨 것이다. 아직 해소되지 않은 의혹들에 대한 추가 수사나 재수사가 예고되는 대목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청와대가) 검찰 수사를 지휘하지 않겠다”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선언과 어긋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야권에서 “또 다른 검찰 줄 세우기, 코드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윤 지검장이 박영수 특별검사의 수사팀장으로 있을 당시 수사기간 연장 불발로 최순실씨 관련 또 다른 기업 비리 등의 수사가 힘들어졌을 때 상당히 아쉬워했던 것으로 알려져, 향후의 국정농단 수사를 ‘하명 사건’으로 단정짓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 결국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던 그가 청와대와 얼마나, 어떻게 거리를 두느냐가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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