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식(50) 김상진(45) 이수민(37) 이한나(32) 30대부터 50대까지 세대를 대표하는 비올라 연주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스승과 제자 사이이기도 한데 세대 차이가 있진 않을까. 걱정은 기우였다. 사진을 찍을 때도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화기애애했고 웃음이 가득했다. 제자는 스승에게 “아직까지도 존경하고 어려워하는 선생님”이라고 칭하지만 자주 술잔을 기울이는 동료이다. 스승은 제자에게 “이제는 제자들이 더 활발한 활동을 한다. 연주 때 나도 좀 불러달라”며 농을 던진다. 고음과 저음 악기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게 해주는 비올라와 같은 성격들이랄까. 어느덧 12회를 맞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를 위해 모인 이들을 최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이들은 특히 25일 ‘비올라와 친구들’ 이라는 제목으로 비올라가 곡의 중심을 이끄는 작품들로만 구성된 무대에 함께 오른다.
모든 연주자가 그렇겠지만 이들은 비올라라는 악기를 ‘운명’이라고 표현한다. 바이올린을 먼저 배웠던 이들은 비올라 소리에 매료돼 비올라로 옮겨갔다. “바이올린을 좀 늦은 나이에 시작했는데, 중학교 3학년 올라갈 때 선생님이 비올라를 보여주면서 한 번 현을 그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 깊은 소리에 바로 반해서 이 악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최은식) “비올라는 악기가 크니까 묵직하고 울림이 커요. 줄이 두꺼워서 소리 낼 때 제 몸이 울리는 그 느낌이 되게 좋았어요.”(이수민) “그래도 저희 세대는 이미 선생님들이 훌륭한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어서 ‘비올라가 뭐야?’라고 묻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아요. 비올라를 접하기가 비교적 쉬워졌죠.”(이한나)
이제는 시작부터 비올라를 손에 쥐는 연주자들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비올리스트는 상대적으로 수가 적고, 잘하는 연주자는 더 적다. 바이올린과 비슷해 보이지만 비올라는 악기가 더 크고 현과 현의 간격이 넓어 빠른 연주를 하기 더 어렵다. 김상진은 “비올라를 잘 할 수 있는 수준이면 차라리 바이올린을 하라고도 한다”며 “비올라는 하나도 돋보이지 않지만 높은 수준의 연주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래 전부터 비올라는 수많은 작곡가들이 사랑해 온 악기다. 바이올린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할 때 그 멜로디를 뒷받침해주는 리듬과 하모니의 중심에는 비올라가 있다. 드보르자크는 스스로도 훌륭한 비올리스트였고, 모차르트는 제일 좋아하는 악기로 비올라를 꼽았다. 국내 최초의 비올라 솔리스트인 김용윤의 아들이기도 한 김상진은 “‘비올라는 바이올린의 형이다’, ‘비올라 파트를 보면 작곡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같은 말만 들으면서 자랐다”며 웃었다.
이들 비올리스트들이 가장 좋아하는 비유가 있다. “와인 한 병이 있을 때, 제1바이올린은 병에 붙은 라벨, 제2바이올린은 코르크 마개, 와인병은 첼로다. 하지만 실질적인 와인은 비올라.” 진정한 4중주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바이올린의 연주뿐만 아니라 비올라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비올라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곡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수민은 이번 연주회에서도 연주하는 드보르자크의 현악5중주 제3번을 추천했다. “곡을 시작하는 비올라의 선율에 반할 거예요.” 이한나는 얼마 전 처음으로 연주를 해 봤다는 브루흐의 ‘비올라를 위한 로망스’를 두고 “이런 곡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은식과 김상진은 브람스의 현악4중주 제3번을 추천했다. 특히 3악장은 다른 악기들은 약음기를 낀 상태로 비올라가 주 멜로디와 카덴차를 연주해 비올라를 빛나게 해주는 곡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부모의 마음’으로 연주회에 임한단다. “비올리스트의 얼굴은 부각되지 않지만 우리가 있어 음악이 살아나잖아요. 옆에 있다가 독주는 몇 마디하고, 그런 게 비올라의 매력이죠.”(이수민) “비올라는 어디든 잘 받쳐줄 수 있는 중요한 악기고 잘 섞이는 악기에요. 저희는 사실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죠(웃음). 자기 욕심이 많은 사람은 비올라를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최은식) 이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는 28일까지 세종체임버홀과 예술의전당 등에서 열린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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