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역할 조율, 국정원은 대북 전략 주도
자주 외교ㆍ강경 기조 탈피
한미동맹 중심 균형외교 전개
북핵 평화적 해결에 방점
국가안보실은 통상에도 관여
기관 수장들 색채 뚜렷
글로벌 외교 지평 넓힐 듯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국가안보실장, 외교부 장관, 통일외교안보 특보를 인선하면서 새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색채가 뚜렷해지고 있다. 국방부 장관과 통일부 장관, 국가안보실 1ㆍ2차장 등 굵직한 인선이 남아 있긴 하지만, 골격을 드러낸 외교안보라인 인선에선 한반도 평화 기조, 한미동맹 중시, 기관별 역할 분담, 외교 개혁 등의 의미가 도드라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교안보컨트롤 타워인 국가안보실장에 외교관 출신의 정의용 전 주제네바 대사가 임명된 것은 군 출신이 외교안보 수장을 맡아 강경 대북 정책을 밀어붙였던 전임 박근혜 정부와 가장 대비되는 대목이다. 전임 정부에서 군 출신의 김장수ㆍ김관진 안보실장이 복합적인 외교 전략 없이 강경 대북 기조로 일관하면서 외교적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정의용 신임 국가안보실장과 문정인ㆍ홍석현 통일외교안보 특보 모두 대북 대화와 협상을 강조해온 외교 전문가라는 점에서 북핵 문제의 외교적ㆍ평화적 해결에 방점을 찍은 외교 활동과 남북 대화 노력이 적극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핵 문제에서 국제사회 공조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외교전문가가 국가안보실장을 맡는 것이 당연하다”며 “한국 외교의 지평이 크게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특히 정 실장은 이스라엘 대사와 제네바 대사를 역임하며 군사 및 군축 협상에 조예가 깊은 데다, 외교부 통상국장을 지낸 통상 전문가라는 점에서 국가안보실이 외교 안보 뿐만 아니라 통상 문제까지 조율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안보 청구서로 통상 문제를 제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외교 안보와 통상이 맞물리는 최근 추세를 대비하는 성격도 담긴 것이다.
아울러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가 ‘자주 외교’를 지나치게 강조해 한미관계에서 마찰을 빚었던 것과 비교하면 한미동맹에 무게를 둔 균형외교를 펼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정 실장은 평소에 한미동맹이 한국 외교의 중추가 돼야 한다고 수없이 말씀하신 분이고, 문정인 교수도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잘 아는 분이며 홍석현 특보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실장이 우리 외교에서 중요한 북핵 문제나 4강 양자 외교 전문가로는 보기 어렵고, 첫 여성 외교부 장관으로 지명된 강경화 후보자도 다자외교 전문가여서 북핵 외교 대응에 미흡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때문에 국가안보실 1ㆍ2 차장이나 외교부 차관 등의 후속 인사를 통해 북핵 외교 진용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각 기관별 수장의 색채가 비교적 선명해 자연스럽게 기관 별 역할 분담이 이뤄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오랜 유엔 근무를 통해 인도주의 외교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강 후보자의 경력을 고려하면 외교부는 기존 북핵 및 4강 외교의 틀을 넘어 글로벌 외교의 지평을 넓히며 인권 등 범세계적 이슈에 초점을 맞출 전망이다.
북핵 대응을 포함한 대북 관계는 외교부 보다 국가정보원이 주도권을 쥐고 핵심 전략을 마련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일찌감치 내정한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는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주도한 북핵 및 대북관계 전문가로서 선대위에서 안보 상황단장을 맡았으며 문 대통령의 신임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안보실은 외교 국방 통일 통상 국가정보원 등의 역할을 조율하는 데 무게가 실릴 수 있다.
강경화 후보자 인선은 검찰 개혁과 마찬가지로 외교부 개혁의 의미도 담겨 있다는 평가다.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가 검찰 뿐만 아니라 외교부와도 상당한 마찰을 빚어 ‘자주파와 동맹파 갈등’으로도 불렸다. 엘리트 의식이 강한 외무고시 출신의 북미 라인 중심으로 짜여진 외교부에 비(非) 외무고시에 비 북미국 출신을 수장으로 앉힌 것은 다양한 배경의 외교 인력을 양성해 외교 다각화에 매진하라는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송용창기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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