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脫원전 정책에 직격탄
“땅값 더 오른다” 매도거부 지주
거꾸로 한수원에 매입 요청 쇄도
한수원 “공사 중단도 검토 중”
경북 영덕군 영덕읍과 축산면 일대 천지원전 건설부지 소유주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더 많은 보상금을 기대하며 지난해 한수원의 매수신청을 거부했던 지주들이 ‘탈 원전 정책’을 표방한 새 정부 출범 이후 되레 땅을 빨리 매입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천지원전건설준비단 등에 따르면 최근 자신의 땅을 조속히 매입해 줄 것을 요구하는 천지원전 건설 예정지역 지주들의 전화가 하루에 10통 넘게 걸려오고 있다. 영덕읍 노물리, 매정리, 석리와 축산면 경정리 일대 지주들 중 일부는 직접 건설사무소를 방문해 “언제부터 부지매입을 재개할 것이냐” “일찍 팔고 싶다”는 등 문의와 요구를 쏟아내고 있다.
준비단은 원전건설을 반대하는 영덕군의 부지매입 지원 중단으로 일괄 매입이 어렵게 되자 지난해 7월 매입공고를 한 뒤 개별매입에 나서 매입대상부지의 18%인 60만㎡ 가량을 매수했다. 원전건설 예정구역 지주의 절반 이상은 외지인들로, 대다수가 더 많은 보상을 기대하고 토지와 주택 등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새 정부의 탈원전 방침이 확고해지자 토지주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천지원전 건설을 믿고 투자했는데 정부의 반대로 원금회수마저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미착공 상태인 울진 신한울원전 3, 4호기와 영덕천지원전은 물론 공정률 30% 가량인 신고리원전 5, 6호기도 지금까지 들어간 돈을 매몰비용 처리하고 공사를 중단하는 방침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모(57ㆍ경북 포항시)씨는 “영덕 원전건설 소식에 은행 대출까지 받아 땅을 사뒀는데 1차 매수시기를 놓쳐 완전 묶이게 됐다”며 “영덕군이 반대할 때만 해도 정부의 원전 건설정책에 한 가닥 희망이라도 걸었는데 이젠 수익은커녕 엄청난 손해만 보게 생겼다”고 한숨지었다. 유가폭등과 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재인 정부 이후에도 원전 확대는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어서 이들의 시름은 깊어가고 있다.
원전 예정지에 투기꾼들이 몰리는 이유는 허름한 주택이라도 있으면 땅과 건축물 보상은 물론 이주용 택지를 조성원가에 제공받는 등 엄청난 혜택을 볼 수 있어서다. 이를 노리고 이미 상당수 투기꾼들이 수 십 채의 집을 지었고, 최근 34세대가 건축허가신청을 냈지만 영덕군이 불허하자 소송까지 제기했었다.
한 주민은 “외지 투기꾼들이 원전건설 구역 안에 사람이 살기엔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무늬만 단독주택을 많이 지어 놓았다”며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영덕군에 의해 건축이 불허된 건축주들은 오히려 건축비를 아끼게 됐으니 쓴 웃음이 난다”고 혀를 찼다.
영덕=이정훈기자 jhlee0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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