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5월 22일
“사악한 권력의 무지한 대리인”이라는 말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 공화당 상원의원 찰스 섬너(Charles Sumner, 1811~1874)가 자신을 폭행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민주당 하원의원 프레스턴 브룩스(Preston Brooks, 1819~1857)의 무덤 앞에서 한 말이다.
1856년 5월 20일 섬너의 의회 연설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그는 노예제 찬성론자들의 아성이던 남부 주 정치인들을 두고 스스로는 명예로운 기사라 여길지 모르지만 실은 ‘창녀(노예제)’를 지키려는 포주에 불과하다며 비난했다. ‘피의 캔자스 사태(1854~1861)’가 확산되던 때였다. 연방 가입을 앞두고 캔자스 준주가 노예주로 남을지 자유주가 될지 결정하는 주민투표가 예정돼 있었고, 북부 공화당과 남부 민주당(당시는 휘그당 전통을 계승한 공화당이 상공업자와 개신교를 지지기반으로 노예제 폐지를 지지했다. 남부 민주당의 지지기반은 노동자 농민, 가톨릭이었다.) 정치세력은 물론이고, 양측 운동가들이 집결해 사병까지 두고 준 전시를 방불케 하는 무력 충돌이 이어졌다.
섬너의 연설을 모욕이라 여긴 프레스턴은 이틀 뒤인 22일, 의회 지정석에 앉아 있던 섬너를, 금도금이 된 지팡이가 부러질 때까지 무차별적으로 구타했다. 섬너는 부상 후유증으로 3년 간 의정활동을 못했고, 이후로도 만성 통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반면 프레스턴은 남부 농민들의 영웅이 됐고, ”잘 했어(Good Job) 같은 격려 문구가 새겨진 새 지팡이를 선물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는 7월 15일 의원직을 사임했지만, 폭행 혐의로 기소돼 300달러의 벌금만 냈고 8월 선거에서 재당선됐다. 그는 57년 새 의회 회기 시작 직전 급성 후두염으로 사망했다.
섬너는 1874년까지 상원의원으로 활약하며 급진적 흑인 인권운동가로 명성을 날렸다. 저술가 스티븐 풀러(Stephen Puleo)는 <몽둥이질: 남북전쟁을 야기하다>란 책에서 섬너가 숨지기 2년 전인 72년 프레스턴의 묘를 방문해 저렇게 말했다고 썼다. “나를 때린 것은 그가 아니라 노예제도였다.(…) 그는 단지 사악한 권력의 멋모르는 대리인일 뿐이었다.”
야비한 언어폭력조차 특정 정치인 지지의 정당한 방편이라 여기는 이들도 스스로는 정의의 기사라 여길지 모른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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