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벨라루스 대사, 은퇴 외교관들 업무복귀 반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이유로 들어
정부의 정책철학 구현이 공무원의 역할
정치와 외교를 구분 짓는 듯 한 궤변 지적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라인 인사를 앞둔 시점에서 외교부의 한 현직 대사가 정치권에 줄을 섰던 선배 외교관들이 외교 업무에 복귀하는 것을 비판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일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우려에 따른 지적이었던 반면 외교와 정치를 전혀 별개의 영역으로 오해한 데 따른 궤변에 가깝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김용호 주(駐) 벨라루스 대사는 지난 13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직업 공무원제 확립'이라는 제목의 글을 외교부 내부망에 게재했다. 김 대사는 이 글에서 "언제부터인가 정권 교체기마다 공무원들이 정치권에 줄을 서고 정권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서 국민들의 눈에 '영혼없는 인간'들로 각인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공무원들이 행태는 공무원 자신들의 목숨부지와 출세를 위한 생존의 몸부림 측면이 크지만 정치권에서 개별 정부 부처의 운영 특히 인사권에 너무 세부적으로 관여한 데 기인한 면도 있다"고 꼬집었다. 정치인들이 부처 인사까지 개입하다보니 외교관들도 정권 입맛에 맞추듯 일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정권을 잡은 정부가 개별 부처의 세세한 인사까지 개입하면 소신을 갖고 일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일견 적절한 지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고개가 끄떡여지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이 다음부터 펼쳐지는 김 대사의 주장은 외교부 안팎에서 큰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 김 대사는 "퇴직한 선배 외교관들이 선거판에 끼어들어 정치권에 들어가더니 선거 뒤 정치인으로가 아니라 현역으로 다 등장하기 시작했다"며 "올드보이들은 현역으로 귀환할 것이 아니라 정치의 길을 가거나 원로로서 자문의 역할에 머무르는 미덕을 살림으로써 후배들이 언제까지고 '꺼진 불도 다시 보며(은퇴 외교관들이 현역으로 복귀하는 것을 걱정하며)' 살지 않게 내버려 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교부에서 은퇴해 정치에 입문했다면, 그대로 정치인의 길을 갈 것이지 외교 업무에 복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복귀한 올드보이들이 현역에 남아있는 후배들의 정치적 중립성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라는 게 김 대사의 주장으로 보인다.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창출한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철학을 구현해줄 수 있는 사람을 요직에 앉힌다. 이 사람은 정치인일 수도, 학자일 수도 또는 해당 분야에서 근무했던 은퇴한 공무원일 수도 있다. 이는 외교부도 해당 정권의 정책 철학을 구현해가는 정부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반면 김 대사의 주장에서는 정치와 외교를 구분 짓는 듯한 태도가 드러난다. 은퇴했던 외교관이 선거판에 뛰어들었다가 외교부로 복귀하는 것이 후배들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는 그의 주장이 그렇다. 외교부의 한 직원은 20일 "정치와 외교가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자신의 공명심을 채우기 위해 정치철학도 없이 정치권에 뛰어든 선배 외교관들을 지적하고 싶었다면 김 대사의 주장은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화된 외교관의 업무 복귀를 문제시 하는 것은 '정치는 외교에 개입하지 말라'는 식의 궤변과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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