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서면 로봇이 우리의 표정과 말투를 살펴 기분을 파악하고, 기분에 어울리는 음악을 취향에 맞추어 틀어준다. 그리고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 취향에 따라 따뜻한 목욕물을 받아주기도 하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물론 목욕물의 온도도 맥주의 브랜드도 로봇이 학습한 우리의 습관에 맞추어 취향대로 서비스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로봇과 함께 할 경험 중의 일부분이다.
이런 미래의 모습까지는 아니지만 지금도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반의 맞춤식 서비스를 통해서 우리 취향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손쉽게 선택할 수 있다. 정보도 마찬가지다. SNS나 포털의 개인화된 맞춤형 서비스를 통해서 나와 같은 견해를 가진 이들과 친구를 맺고 그들이 생산하고 공유하는 정보만을 접하며, 나와 같은 관점으로 현상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뉴스만을 취한다. 넘쳐나는 다양한 정보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제한적 경로로 제한적 정보를 접하던 시절보다 더 편협하고 경직된 삶을 살아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라디오로 음악을 듣던 시절, 원하는 한두 곡을 듣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며 내 취향이 아닌 곡들도 들어야 했다.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곡들을 접하며 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9시 뉴스와 신문이 세상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주요 통로였던 시절, 채널을 9시 뉴스에 고정시킨 채로 관심이 없는 뉴스도 들어야 했고 신문 지면을 살펴보면서 때로는 읽기 싫은 글들도 접해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악만 듣고 정보만을 취하며 자신과 같은 견해를 가진 이들과만 소통하면서 우리는 점점 편협해지고 있다. 스스로의 제한적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 세상의 진리이며 전부라고 믿는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 다름을 틀렸다고 치부한다. 이번 대선 결과를 놓고도, 내가 지지하지 않던 후보가 그 만큼의 표를 얻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심지어 내가 지지하지 않던 후표에게 표를 준 이들을 혐오하고 적대시하는 이들도 있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인간의 노동은 많은 개별 영역에서 점차 기계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 기계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마지막 영역은 한 분야의 전문 지식도 숙련된 기술도 아닌 통찰력, 즉 개별적인 사실이나 현상을 보고도 그와 관련된 전반적인 실태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요구하는 영역일 것이다. 하지만 선호하는 일부 매체를 통해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우리는 오히려 하나를 알고서 열, 백을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선입견과 편견을 걷어 내고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주변의 현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하나를 알고도 열 백을 헤아리는 통찰력을 키울 수 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반의 개인화된 맞춤형 서비스는 일상 속에서 선택 비용을 줄여 생산성을 높여줌으로써 보다 많은 여가를 취향대로 즐기며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개인화된 맞춤형 서비스의 익숙함에 젖어 입맛에 맞는 것만을 접하다 보면, 어느새 눈과 귀에 거슬리는 것들은 멀리하게 된다. 때로는 불편함을 걷어내고 거슬리는 것들도 보고 들어야 한다. 나와 다른 취향과 견해를 가진 이들과도 어울리며 그들의 관점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나락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해 우리의 삶에서도 관계에서도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살아가야 할 가족이고, 친구이며, 우리는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의 시민이기 때문이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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