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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눌린 소시민 목소리 찾아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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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눌린 소시민 목소리 찾아주고 싶었다”

입력
2017.05.1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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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인물들의 증언을 시적인 문장으로 묘사하는 이유에 대해 “끔찍한 내용으로 가득 찬 인간의 삶을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며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수습하고 죽어가는 소방관 아내의 증언을 기록하면서, 그녀가 얼마나 남편을 사랑했는가 하는 메시지도 담는다”고 말했다. 대산문화재단 제공
작가는 인물들의 증언을 시적인 문장으로 묘사하는 이유에 대해 “끔찍한 내용으로 가득 찬 인간의 삶을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며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수습하고 죽어가는 소방관 아내의 증언을 기록하면서, 그녀가 얼마나 남편을 사랑했는가 하는 메시지도 담는다”고 말했다. 대산문화재단 제공

“미국이 전세계 주도권을 장악한 시대가 저물고 한중일 같은 새 지역이 부상하는 시기에 이런 변화를 제 눈으로 확인하는 건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입니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9)는 19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23∼25일 교보빌딩에서 열리는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첫 방한한 그는 “18일 서울 거리를 걸을 수 있었었는데 이때 받은 인상은 ‘(한국은) 남자들의 나라’라는 것”이라며 “검은 제복을 입는 직종은 대부분이 남자였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이 사회 요직 예컨대 국방장관에 오른다면 전쟁이 덜 일어날 것이지만, 러시아나 한국은 남성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모습은 아직 상상하기 이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대학 졸업 후 7년간 언론사에서 근무”했다. 이 이력을 발휘해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 장르인, 일명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을 만들었다. 다년간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논픽션의 형식으로 담는다. 시(詩) 같은 미문이 가득한 문장은 정치 이데올로기의 의미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방한에 맞춰 작가의 ‘아연 소년들’(문학동네)도 출간됐다. 1979년부터 10년간 이어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상흔을 절규와 같은 증언으로 기록한, 작가 특유의 ‘목소리 소설’이다. 작가는 소년병과 전사자들의 어머니를 500차례 이상 인터뷰해 전쟁의 고통을 모자이크처럼 재구성한다. 1989년작인 이 소설은 작가를 법정에 세운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인터뷰에 응했던 일부 참전군인과 어머니들은 작가가 사실을 날조하고 소년병들을 ‘살인로봇, 강간범’으로 묘사했다며 명예훼손으로 고소장을 냈다. 한국어판은 재판 경과를 기록한 일지도 실었다.

19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상상마당에서 열린 독자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공식행사를 시작한 작가는 포럼 첫날인 23일 ‘미래에 관한 회상’을 주제로 기조발제를 한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취재한 경험을 토대로 방사능 오염이라는 재난이 인류 역사에서 어떤 의미인지 짚는다. 22일 서울대 러시아연구소, 24일 서강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연구소에서 초청토론회도 이어진다. 작가는 “제 책이 유명해졌다고 해서 책에 등장했던 사람들의 고통이 줄었다고 생각하진 않다”며 “순수예술이 일순간 인간의 삶을 변화시킨다 생각은 천진한 것이다. 제 책에서 말하고자 한 바는 전체주의 시대를 산 사람들이 결국 무엇을 얻었느냐다”고 말했다.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19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빌딩에서 열린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19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빌딩에서 열린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목소리 소설이란 특유의 장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제가 40년간 써온 것은 ‘붉은 유토피아’라고 일컬었던 예전 소련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다. 전세계적으로 소련만큼 공산주의 이념을 테스트하고 실험한 국가는 없다고 본다. 한데 여전히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시들지 않았다. 저는 평범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공산주의가 뭔지를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장르를 택했다. 바로 이 작은 사람들이 국가의 이용 대상이었기 때문에. 국가는 이들을 이용하고 서로를 죽이게 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놀라운 이야기가 사라지는 건 공정하지 않다. 전쟁에 대한 얘기를 조명할 때 탱크 몇 대가 투입됐는지는 같은 정량적 사실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철저히 인간의 정신성에 관심을 갖고 있다.”

-수백 명을 인터뷰해 책으로 엮는다. 수많은 증언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매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절대적 진실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퍼즐 조각을 갖고 있다. 이런 대화에서 사회이념 속 진실을 걸러내야 한다. 책 한 권을 쓰는데 5년, 10년이 걸리는 데 중간쯤 다다르면 줄거리를 추려낼 수 있다는 느낌이 오고, 그에 맞춰 (증언을) 추려낸다. 그 사람만이 말한 진실을 선별하는 데는 작가인 제가 인생과 현실을 바라보는 주관이 작용한다. 어떤 말을 선별하는지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다. 직관도 작용하니까. 한가지 원칙은 진실을 최우선 화두에 놓는다는 거다.”

-최근 출간한 ‘아연소년들’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갈될 만큼 고통스러웠다고 썼다. 수십년 이런 작업을 이어온 동력은 뭔가

“저술이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더 어려운 직업도 많으니까. 소아암 전문의나 군의관처럼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위험이 큰 직업이 많다. 저는 러시아 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진실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프가니스탄에 갔다. 갈 수 있다면, 여력이 된다면 당연히 직접 가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이제까지 사람이 죽고 죽이는 이야기를 썼다면 앞으로 신작은 사람이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쓰고 싶다’고 말한 적 있다. 의식이 전환된 계기가 있나?

“소련 공산주의에 대해 이미 충분히 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0년간 ‘이념의 시대를 사는 작은 사람들’을 주제로 썼다. 예를 들어 제가 체첸을 다시 가는 일은 없을 거다. 다시 가도 기존의 제 시각을 벗어나진 못할 거니까. 이런 맥락에서 이제는 인간의 사랑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도 마냥 행복한 주제를 쓸 수도 있지만, 진지하게 바라보면 비극적인 주제가 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이렇다 할 문학이 나오고 있지 않다. 전쟁과는 또다른 참사를 겪은 우리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작가는 주관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것, 본인이 세상을 보는 시각을 쓴다. 세월호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비극적인 주제를 다루는 건 쉬운 게 아니다. 이런 장르를 쓰기 위해서는 저널리즘적 지식 뿐 아니라 사회학적, 문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월호를 주제로 작품을 쓰면 작가는 철학자 같은 눈이 필요하다. 세월호가 뻔한 참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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